"응급환자 무조건 받아라" 뺑뺑이 대책…의사들 "오히려 환자 위험"

이창섭 기자, 박정렬 기자 2023. 7. 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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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 추진
심정지 등 중환자 이송할 응급실 선정 후 이송 통보
의료계 "무조건 환자 수용? 골든타임 놓쳐 더 위험"
응급실을 제때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이른바 '뺑뺑이' 사건이 최근까지도 반복되는 가운데 정부가 중환자 수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의료계는 "의사가 없는데 환자만 무조건 수용하면 무슨 소용이냐"며 정부 대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환자 옮길 응급실 선정 후 '이송' 통보 추진
(강원=뉴스1) 한귀섭 기자 = 16일 오후 1시26분쯤 강원 홍천군 화촌면 성산리 44번국도 동홍천IC 입구 서울방향에서 발생한 수학여행 버스 3대 등 7중 추돌사고로 인해 학생 총 82명이 다쳐 춘천지역 병원으로 분산이송됐다. 사진은 강원대병원 응급실에 붙여진 환자 포화상태를 알리는 안내문. 2023.6.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를 개정해 응급의료기관의 중환자 수용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은 올해 1월 입법 예고됐다. 그러나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길어지면서 추진이 늦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행 규칙안을 다시 재구성하는 중이라 당장 언제까지 개정이 완료될 것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목표로는 올해 하반기까지 개정을 완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핵심 개정 내용은 심정지 등 중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수용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신설되는 시행규칙 제39조 2의 6항은 심정지 환자 등 중증 응급환자가 근처 응급의료기관의 수용 곤란으로 응급실 이송이 불가능할 경우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이송할 응급의료기관을 선정한 다음 환자 이송을 통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제10조 2항에 따라 시도 소방본부에 설치되는 기관이다. 이송을 통보할 응급의료기관의 구체적인 선정 기준은 시도 응급의료위원회가 마련하도록 규정했다.

이 밖에도 개정안은 응급실이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응급의료기관 시설,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 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추어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와 '그 밖에 통신·전력 마비, 화재·붕괴 등 재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이다.

복지부가 중환자 수용 의무화까지 추진하는 이유는 최근까지도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대전에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의식을 잡고 쓰러졌다. 대전 시내에서 받아주는 종합병원이 없어 구급차에서 1시간 동안 표류하다 세종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사망했다. 지난 12일 제주에서는 응급실 포화로 80분가량 대기하던 혈액 투석 환자가 심정지로 사망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응급의료 문제를 재조명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페이스북에서 10곳의 병원을 80분간 표류하다 후두염으로 사망한 5살 남아 오정욱군을 언급하면서 "중증 응급환자 2명 중 1명이 골든타임을 놓칠 정도로 소위 '응급실 뺑뺑이'는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선진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서글픈 민낯이다"고 적었다.
의사와 병상·장비 등 치료 환경 부족한데… 의료계 비판
응급실
의료계에선 정부 대책을 두고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의사가 없고, 병상과 장비 등 치료 환경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환자를 수용하게 하는 건 오히려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진우 동아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난 5월 용인에서 발생한 70대 환자처럼 교통사고 등 중증 외상환자는 일반적인 응급환자를 위한 인력·장비로는 치료가 어려워 외상센터를 찾아야 한다"며 "중증 환자는 최종 치료가 가능한 곳에 가장 먼저 이송돼야 하는데 이런 '대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가까운 응급실만 찾을 경우 오히려 환자의 사망 위험은 더 커진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권역외상센터를 도와 진료를 수행할 지역 외상센터 설치 기준은 2012년 관련 법률이 제정된 이후 10년이 넘도록 마련되지 않고 있다"면서 "포화한 외상 치료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덧붙였다.

소방청부터 시작하는 환자 이송 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잘못된 수용 결정은 잘못된 보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119 구급대가 환자 분류를 제대로 못 한 상태에서 무조건 응급실 수용을 강제하면, 소방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고 환자는 사망하며 환자를 받은 의사만이 모든 걸 책임지는 부당한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며 "과거 응급 상황의 상담과 환자 분류, 병원 간 전원을 조정하던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에 준하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도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의 중증도를 평가할 때 쓰는 분류 체계(KTAS)를 119구급대에 적용한다고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 되레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를 부추길 수 있다"며 "환자에게 맞는 병원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이송 병원 선정 지침'을 별도로 구축하고 고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 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대책 중 하나로 언급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7일 라디오에서 "현장 의견을 들어보니 큰 종합병원인 권역응급의료센터에 경증 환자가 가는 경우에는 본인 부담을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건의가 있어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응급실 이용 부담 강화는 건강보험과 연계돼 있어 곧바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실 본인 부담은 응급의료법의 범위를 넘어서고 국민건강보험법에 관련 규정이 있어 보험 관련 부서들과 조금씩 협의하고 있다"며 "단기간에 바로 개정해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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