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정책, 대통령이 말한 '이권 카르텔' 궤도 한가운데 돌고 있다

2023. 7. 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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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권 카르텔'의 혁파, 철도 관료들부터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단행한 인사의 특징은 11개 부처 12명에 이르는 전면적 차관인사였다. 차관개각이라고도 불린 이 인사의 특징은 대통령실 비서관들의 전진 배치였다.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앞서서 추진할 실세 차관들이 국정의 키를 잡았다는 평가도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줄곧 이권 카르텔의 분쇄를 통한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기를 강조해왔다. 윤 대통령은 차관에 임명되는 비서관들에게도 "공직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은 6월 30일 브리핑을 통해 "부패한 이권 카르텔을 외면하거나 손잡는 공직자들은 가차 없이 엄단 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임을 강조했다.

1, 2차관이 모두 바뀐 국토부에서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는 개혁의 첫걸음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할까? 바로 철도이다. 철도 만큼 관료들이 국민 편익을 외면하고 꿈쩍 않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철도의 특징은 네트워크 산업이란 점이다. 조화와 상호 호환성이야 말로 네트워크 산업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국토부 철도 정책은 네트워크를 폐쇄적으로 차단하고 발을 묶어 제 기능을 못하게 해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서울과 용산발 고속열차가 여수, 순천, 포항, 진주, 창원을 오가는데 수서발 고속열차는 다닐 수 없다는 게 말이 될까? 이들 지역에서는 수년 전부터 수서로 가는 고속열차를 운행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해왔다. 지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까지 나섰지만 국토부는 요지부동 바위처럼 버텼다.

주요 지방 도시들과 수서를 잇는 고속열차 불통의 문제는 국토부가 고속철도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SR을 출범시킬 때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10년 동안 국민들이 불편을 감내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관료들이야말로 대통령이 말하는 이권 카르텔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문재인 정부시절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고속철도 통합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국토부의 반대와 정부의 무기력이 중첩되면서 무산됐다. 보통의 의지로는 카르텔의 강고한 벽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역 주민들의 원성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이 되자 국토부는 이제야 수서와 지역 도시를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9월부터 SRT는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경전선, 전라선, 동해선을 달릴 계획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국민 편익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이다. 어떻게든 SR의 사업영역 확대에만 치중한 나머지 아랫돌 빼서 윗돌을 채우는 모양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SR은 코레일에서 임대한 차량을 포함해 10량 1편성의 산천 32편성을 가지고 있다. 이 32편성은 정비를 위한 예비 편성을 제외하고 최대한 운행되고 있는 현실임에도 좌석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유력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경부선 운행 열차 감축이다. 열차 운행 편 수를 줄여 진주, 포항, 여수행 열차를 운행하게 된다면 경부선 열차 이용자들의 불편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안이 있음에도 국토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 역사의 모습 ⓒ연합뉴스

고속열차 가용 효율이 높은 코레일의 KTX가 수서를 오가면 해결될 일이다. 국토부 관료들이 단 1%의 상상력만 더 발휘해도 되는 쉬운 대안들이 KTX를 선택하는 순간 펼쳐지게 된다. 2편성이 연결된 KTX산천 복합 열차를 이용해 지역 도시들에서 서울역과 수서역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다. KTX와 SRT를 연결한 복합 열차 운행도 가능하다. 이 같은 방식은 현재 선로 포화상태로 용량 부족을 보이고있는 평택-오송간 선로용량의 효율화에도 도움이 된다.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는 20량으로 편성된 KTX1 투입으로 좌석공급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더 많은 열차와 좌석을 공급할 수 있게 되어 국민 편익은 높아지고 코레일과 SR의 수익도 늘어난다. 당연히 두 회사로부터 선로사용료를 징수하는 국가철도공단에도 이익이다.

수서발 경부선 좌석공급을 줄이지 않아도 되고 선로 이용 효율성도 높이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지방 도시 고속열차 혜택을 확대하는 좋은 대안을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장 코레일과 SR을 통합하자는 것도 아니다. 고속열차 통합은 그동안 누적된 비효율과 철도 네트워크 왜곡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추진될 것이다. 폭염과 극한 호우가 등장한 기후위기 시대에 철도를 통한 교통 분야 온실가스 저감은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철도 산업의 건강한 발전, 중복투자 낭비와 껍데기 경쟁 효과 대신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철도 통합은 진보나 보수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국토부는 오직 한가지 국민 편익의 관점에 서야 한다. 철도 정책이 대통령이 말한 이권 카르텔의 궤도 한가운데를 돌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국토부는 수서행 KTX라는 매력적인 대안을 고민해 볼 때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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