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료감정 제도, 더 신속하게···법원, ‘감정의 풀 확대·감정료 개편’ 검토
대법원이 의료감정 제도 개선에 나선다. 감정 담당의사 풀을 확대하고 의료감정료를 현행보다 높이는 쪽으로 산정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 의료감정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2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법관과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를 대상으로 ‘의료감정제도 개선방안 관련 의견조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설문기간은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다.
사법행정자문회의 재판제도 분과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의료감정제도 개선 방안’을 안건으로 회부하고 여러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한 끝에 이번 설문조사 실시에 나섰다. 신체감정·진료기록감정 등 의료감정 절차는 손해배상 사건 등에서 필수 요소로 꼽힌다. 그런데도 그간 의료감정 절차가 늘어지거나 부실하게 이뤄져 재판 자체가 지연되고 신뢰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재판제도 분과위원회는 설문조사에서 현행 의료감정 제도와 법원행정처 정책연구용역 결과를 검토해 마련한 개편 초안을 토대로 의견을 물었다.
우선 감정 담당의사 풀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행 감정예규는 국공립병원, 대학부속병원 또는 종합병원만 감정촉탁 기관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여기에 병원(의원 제외)·치과병원(치과의원 제외)·전문병원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병원에 소속된 의사뿐 아니라 종합병원 등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의사 개인도 감정인 명단에 등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상대적으로 업무부담이 덜하면서도 충분한 임상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를 감정인으로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감정절차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서 수련기간을 제외하고 10년 이상 임상경험이 있는 의사만 감정 담당의가 될 수 있도록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같은 방안이 현실화하면 재판부는 제1감정촉탁기관(국공립병원 등), 제2감정촉탁기관(병원 등), 개인 감정인 등 복수의 명단 유형에서 감정촉탁기관 또는 감정인을 지정할 수 있다.
의료감정료 산정 방식도 개편할 예정이다. 감정예규에 따르면 현재 과목당 신체 감정료는 40만원, 진료기록 감정료는 60만원이다. 2008년 예규 제정 후 약 10년간 과목당 각각 20만원, 30만원을 유지하다 2017년 감정료를 100% 인상했다. 그러나 감정을 맡는 대학교수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노동 가치에 비해 감정료가 지나치게 낮다는 말이 여전히 나온다.
기본 감정료에 더해 기본 질의문항 수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문항 수에 비례해 추가 감정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질의문항 20개 이하 기준 기본 신체감정료가 40만원인 경우 20개를 넘는 문항 개수에 따라 개당 감정료를 추가 지급하는 식이다. 신체감정 총 질의문항 수가 40개이고, 추가 문항 1개당 초과 감정료를 3만원으로 정하면 총 감정료는 100만원[40만원+(3만원X20개)]이 된다.
이 같은 감정료 부과 체계에 공감하는지, 기본 감정료는 현행 수준으로 적절한지, 추가 문항당 초과 감정료는 1만~5만원 중 얼마가 적정한지, 혹은 더 높은 수준의 감정료가 필요한지 등을 묻는 질문이 설문지에 포함됐다. 설문은 의료감정 개선방에 대한 의견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부장판사는 “바람직한 방향의 개선 방안”이라면서도 “감정의들에게 일정한 직위를 수여하는 등 감정에 참여할 동기를 마련하는 일이 추가로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뒤늦게나마 법원이 개선을 위해 힘쓰는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감정절차를 민간 영역에 위탁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진행하도록 근본적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의료감정제도 개선방안은 아직 법원행정처가 구체적으로 제도 시행을 추진하는 단계에 있지는 않다”며 “재판제도 분과위원회는 법관 및 변호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거쳐 2023년 하반기 중 사법행정자문회의에 의료감정제도 개선에 관한 최종적인 연구·검토 결과를 보고하고 결정사항이 도출되면 그 취지에 따라 구체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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