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둘러싼 경찰의 진실공방…“또 우리가 뒤집어 쓰나” 불만도

이학준 기자 2023. 7. 2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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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실 수사의뢰에 순찰차 블랙박스 영상 공개한 경찰
”태블릿PC 오류로 전달 안돼…지령 무시할 이유 없어”
오송 참사 수사본부 꾸린 경찰, 중대시민재해 적용 검토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부실대응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이 순찰차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하는 등 해명에 나섰다. 국무조정실(국조실)이 참사와 관련, 현장 경찰관 6명에 대한 중대한 비위가 있다며 수사를 의뢰하자 정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환경부와 지자체에도 참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만 콕 찍어 수사를 의뢰한 것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는 국조실이 ‘경찰 책임론’에 불을 지피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 참사 40여분 전 출동지시…”태블릿PC에 접수 안돼”

이번 의혹의 핵심은 참사 당일인 지난 15일 오전 7시 58분 접수된 신고다. 당시 청주 흥덕경찰서 112상황실은 ‘궁평지하차도 차량 통제가 필요하다’는 시민 신고를 받고 오송파출소 순찰차에 참사가 벌어진 궁평2지하차도로 출동할 것을 지시했다. 이 지령이 내려간 때는 참사 발생 40여분 전이었다. 만약 곧바로 출동해 지시에 따랐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오송파출소 순찰차는 오전 7시 42분쯤 쌍청리 회전교차로 인근서 교통통제를 하다 ‘조치원에서 청주로 나가는 국도에 역주행 차량이 있다’는 취지의 신고를 접수하고 15분 만에 현장에 출동해 조치를 마친 참이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일인 지난 15일 오전 7시 58분쯤 경찰 순찰차 블랙박스. 당시 청주 흥덕경찰서 112상황실은 참사가 벌어진 궁평2지하차도로 출동하라고 지시했지만, 순찰차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현장 경찰관들은 순찰차에 설치된 태블릿PC 오류로 관련 지령이 접수되지 않아 대응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전국경찰직장협의회

그런데 이 순찰차는 출동 지시가 내려진 궁평2지하차도가 아닌 궁평교차로·쌍청리회전교차로 등 다른 침수지역을 순찰하며 도로를 통제하는 한편 아동복지시설에 들러 대피가 완료됐는지를 파악했다.

현장 경찰관들은 오전 8시 45분쯤 참사와 관련한 신고가 다수 접수되고 나서야 궁평2지하차도로 향했다. 이들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2분. 이미 차량 17대가 수장된 지 20여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경찰은 이 순찰차가 이전부터 관련 지령을 받아 현장에 출동해 조치했다고 보고한 반면, 국조실은 허위보고라고 판단해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현장 경찰관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경찰 측은 출동 지시가 순찰차에 설치된 태블릿 PC를 통해 접수돼야 했는데, 오류로 인해 전달이 되지 않아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사 당일 오전 5시부터 인근 지역 교통통제를 하고 있던 터라 출동 지시를 무시한 채 일부러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경찰 측 주장이다.

충북경찰청은 현장 경찰관이 출동한 사실이 없음에도 출동했다고 보고한 이유에 대해 단순 오인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상황실은 해당 순찰차가 궁평2지하차도 인근에 위치한 것으로 나오자, 지령대로 궁평2지하차도 출동이 완료됐다고 착각했다.

법조계는 태블릿PC 오류가 사실이라면 현장 경찰관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 적용은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적용 여부는 참사 등 피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지, 그럼에도 피해를 회피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관련 지령을 인지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면 고의성과 예견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찰관이 (참사) 결과를 예견하고 그 결과를 회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견도 못했고 회피를 위한 방지 행위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면 고의성이 없다는 거다. 고의가 없는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냐”고 했다.

한편 작년 ‘핼러윈 참사’에 이어 오송 참사에서도 경찰 책임론이 부각되자 내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참사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미호강 교량 공사로 쌓은 임시 제방 붕괴’와 ‘교통 미통제’에 대한 책임은 경찰뿐만 아니라 부처 장관, 지자체장, 공공기관장에도 있는 상황에서 경찰만 수사의뢰하는 것은 과하다는 반응이다.

경찰 서울지방경찰청 로고./뉴스1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핼러윈 참사 때와 판박이”라며 “현장 경찰관들이 순찰차를 타면 이동동선이 초 단위로 체크가 된다. 거짓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경찰만 콕 찍어 수사의뢰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 두 갈래로 나뉜 수사…중대시민재해 적용 가능할까

대검은 참사가 벌어진 관할 지검장인 배용원 충주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꾸리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참사 전반에 대한 수사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에 따라 검찰의 대형참사 수사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작년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핼러윈 참사 수사와 관련해 “검수완박이 됐으니까 대형참사에 대한 수사본부를 대검에 만들 순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검찰 수사는 현장 경찰관이 참사에 적절히 대처했는지와 112신고에 대한 보고체계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 경찰 부실대응과 연관된 사건에 한정될 전망이다. 검찰은 대형참사 수사권은 없지만, 경찰의 직권남용 등 중대 비위는 수사할 수 있다. 별도의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은 수사 범위에 대해 검찰과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공무원 범죄에 대한 관련성이 인정되면 검찰도 수사를 할 수 있다”며 “수사 범위·대상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검찰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검찰과 별개로 국조실도 이번 참사에 대한 전반적인 감찰에 나섰지만, 수사권은 경찰에 있어 실질적인 수사는 경찰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본부를 출범한 경찰은 이번 참사에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쯤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를 미호강에서 범람한 흙탕물이 덮치고 있다./연합뉴스

중대시민재해는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적용 가능하고 책임 주체는 중앙행정기관장과 지자체·공공기관장 등이다.

앞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학자·전문가 130여명으로 구성된 중대재해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 전문가넷)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하차도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고, 관리상 결함으로 재해가 발생해 중대시민재해에 부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중대시민재해 적용 여부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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