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대신 프라하·더블린으로… 폭염이 바꾼 유럽여행 지도
세계 각지에서 이례적인 폭염이 발생하고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이 계속 깨지면서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인기 관광지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CNN이 유럽여행위원회(European Travel Commission·ETC) 설문 자료를 인용해 2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 이후 본격적인 첫 여름휴가철에 ‘더위 피하기’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관광객이 몰리던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지중해 인근 지역 대신 상대적으로 덜 더운 북·동유럽에 대한 여행 수요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CNN에 따르면 해당 설문조사에서 ‘올여름·가을 지중해 여행지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10% 줄었다.
전통적으로 유럽인들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휴양지는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 그리스와 같이 지중해와 맞닿은 해안가 지역이었는데, 최근 남유럽 일부 지역의 기온이 40도 내외로 오르는 날들이 지속되며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줄어들고 있다.
ETC는 “체코, 불가리아, 아일랜드와 같이 상대적으로 위도가 높은(북쪽에 있는) 국가들의 인기가 급증했다”며 “보다 온화한 기온을 찾는 여행객들이 중북부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여행 데이터 기업 포워드키스는 여름휴가 성수기인 7~8월 영국발 남유럽 국가의 항공편에 대한 검색 비율이 4%포인트 줄어든 반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검색량은 지난달보다 3%포인트 증가했다. 포워드키스 관계자는 “남유럽 국가행(行) 검색이 여전히 더 많기는 하지만 북부 여행지에 대한 선호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8일 이탈리아 로마 기상청은 이날 로마에서 최고 기온이 41.8도까지 올라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전했다. 그리스 아테네와 스페인 마드리드도 이날 39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며 남유럽 전역이 폭염에 시달렸다. 이탈리아 기상학회는 이번 폭염을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 나오는 지옥의 수문장의 이름을 따 ‘케르베로스’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로마의 시민 보호청장 주세페 나폴리타노는 18일 콜로세움 앞에서 기절한 영국인 관광객을 포함,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며 폭염 상황에 대한 관광객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 14일 그리스에서도 아크로폴리스를 찾은 관광객 한 명이 무더위에 지쳐 쓰러져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강도 높은 폭염이 이어지는 국가들은 관광 주의보를 내리며 인명 피해 줄이기에 애쓰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14~16일에 이어 20~23일에도 기온이 올라가는 정오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아크로폴리스 등 주요 야외 유적지를 폐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8일 주요 관광지를 포함한 23개 도시에 폭염 적색경보를 발령했고, 로마시는 관광객들에 무료로 물병을 나눠주는 등 폭염 대처를 돕는 ‘더위 자원봉사자’를 긴급 배치하기도 했다. 적색경보는 기상경보 4단계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폭염이 취약계층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건강상 위협이 된다는 의미다.
역시 폭염이 이어지는 미국에선 ‘폭염 체험 관광’에 나서는 이들도 늘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데스벨리의 기온이 50도가 넘어서는데도 관광객이 몰린다고 보도했다. 이곳은 최근 65세, 71세 고령자가 폭염에 잇따라 사망한 곳이다.
데스벨리 국립공원 대변인 에비 와인저는 가디언에 “어떤 관광객들은 ‘데스벨리 기온이 기록을 깰 수도 있다’는 뉴스를 보고 ‘최고 기온’을 기념하려고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전 세계 기록적 폭염이 발생한 원인으론 4년 만에 발생한 ‘엘니뇨’ 현상, 화석 연료 사용 등이 초래했다고 알려진 지구온난화가 꼽힘...엘니뇨는 적도 부근 수온이 상승하는 현상으로 엘니뇨가 발생할 경우 지구 온도는 통상적으로 높아진다. 수온이 2도 이상 상승할 경우 ‘수퍼 엘니뇨’라고 불리는데, 전문가들은 올해 수퍼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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