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차례 회담 끝 정전 서명… 미-북, 악수도 않고 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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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 70주년을 맞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은 판문점에서 북한 측 남일 대장, 유엔군 측 윌리엄 K 해리슨 미국 육군 중장 참석으로 이뤄졌다.
협정문 참석자 서명 위에는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원수 김일성', 중국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펑더화이(彭德懷)', 유엔군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국 육군 대장 마크 W 클라크' 등 3명의 서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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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서 미·북·중 3명이 서명
오는 27일 70주년을 맞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은 판문점에서 북한 측 남일 대장, 유엔군 측 윌리엄 K 해리슨 미국 육군 중장 참석으로 이뤄졌다. 효력 발생 시점은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였다. 이를 위한 1951년 7월 8일 예비회담, 10일 본회담은 개성에서 열렸다. 개성이 ‘3·8선’에 걸쳐 있는 도시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3·8선은 1945년 8월 10일 일본 항복에 앞서 한반도에 들어왔던 소비에트 연방 측이 미국의 딘 러스크 국무부 정책과장보 등 제안을 받아들여 그어졌다. 러스크 과장보가 한반도 지도에서 3·8선을 긋고 그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는 초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더 남쪽으로 경계선 요구가 소련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한 것과 달리 초안대로 확정됐다. 북한은 3·8선을 정전협정 당시 군사분계선으로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엔군은 그보다 30∼50㎞ 위를 요구했다.
판문점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양측이 협상을 재개한 곳이다. 158차례 회담, 575차례 공식회의로 약 1800만 단어를 주고받은 끝에 협상이 마무리됐다. 정전협정 조인식 현장에서 해리슨 중장과 남일 장군은 인사, 악수도 없이 서명하고 12분 만에 돌아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 한국 정부 인사가 1명도 참여하지 않은 데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북진 통일론’으로 중국군 철수, 북한의 무장해제,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 등을 요구한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시작전권이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위임돼 있었기 때문에 한국 측 서명 없이도 협정의 효력은 발생했다.
협정문 참석자 서명 위에는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원수 김일성’, 중국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펑더화이(彭德懷)’, 유엔군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국 육군 대장 마크 W 클라크’ 등 3명의 서명이 있다. 전쟁 종료를 의미하는 ‘종전’이 아니라 전투를 일시 중단한 ‘정전’ 상태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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