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란이 뭐길래…부글거리는 중동 [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2023. 7. 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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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내 잇단 ‘쿠란 모욕’ 시위, ‘반스웨덴 감정’ 고조
중동 주요 국가, 스웨덴 대사 추방하거나 초치
‘쿠란 소각’, 가장 쉽고 상징적 이슬람 모욕 행위로 여겨져
무슬림 이민자 많고 ‘표현의 자유’ 강조하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논란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라크 정부가 20일(현지 시간)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추방했다. 같은 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주이라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대사관에 난입해 불을 지르기도 했다. 또 이라크 정부는 스웨덴의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인 에릭슨의 자국내 영업 허가를 취소했다. 모하메드 시아 알 수다니 이라크 총리는 “스웨덴과의 외교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튀르키예,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은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불러 엄중한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란은 자국의 신임 주스웨덴 대사 파견도 당분간 보류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 파키스탄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의회에선 스웨덴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채택했다.

무슬림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세계 57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이슬람협력기구(OIC)도 스웨덴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스웨덴에서 계속된 ‘쿠란 소각’ 시위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모스크 근처에서 쿠란을 소각한 이라크 출신 기독교인 살완 모미카. 쿠란 소각은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가장 심한 모욕 행위로 여겨진다. 페이스북 캡처

스웨덴이 이슬람권 국가들의 집중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바로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이라크 출신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살완 모미카가 모스크(이슬람 사원)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쿠란과 이라크 국기를 소각했다. 그는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 조각을 쿠란 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다. 20일에도 모미카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주스웨덴 이라크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때는 쿠란을 소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쿠란을 발로 밟고 걷어찼다.

불과 한 달 정도 사이에 반복적인 쿠란 모욕 시위가 스웨덴에서 발생한 것.

하지만 스웨덴에서 쿠란 소각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1월에는 덴마크 극우정당인 ‘강경노선’의 라스무스 팔루단 대표가 주스웨덴 튀르키예 대사관 앞에서 쿠란을 소각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팔루단 대표는 ‘스웨덴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이슬람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1월24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의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당시 덴마크 극우정당 ‘강경노선’의 라스무스 팔루단 대표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벌인 쿠란 소각 시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앙카라=AP 뉴시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국 내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쿠르드족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팔루단 대표는 지난해 4월에도 스웨덴 곳곳에서 반이슬람, 반이민을 주제로 시위를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도 쿠란을 소각해 물의를 일으켰다.
덴마크 극우정당 ‘강경 노선’의 라스무스 팔루단 대표의 페이스북. 쿠란 소각 시위를 수차례 기획한 팔루단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에 무슬림 이민자로 보이는 트럭 운전사가 ‘트럭 테러’를 감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게재해 놓았다. 트럭에는 ‘평화의 종교(이슬람을 의미)’라고 붉은 색으로 써 있다. 또 그림에서는 짤렸지만 운전자 위의 말풍선에는 ‘신은 위대하다(무슬림들이 자주 하는 말)’고 써 있다. 페이스북 캡처

결국 이슬람권 국가들은 스웨덴에서 쿠란을 소각하는 ‘이슬람 모욕 시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스웨덴 당국이 사실상 이를 제지하지 않고 있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2곳(메카, 메디나)이 있어 ‘성지 수호 국가’, ‘이슬람 종주국’으로 일컬어지는 사우디 외교부는 20일 “스웨덴 당국의 반복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은 일부 극단주의들에게 성스러운 쿠란을 태우고, 훼손해도 되는 공식적인 허가증을 준 것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스웨덴은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쿠란 소각이 이뤄지는 시위에 그동안 특별한 조치를 취해 오지 않았다. 모미카가 벌인 시위에 대해서도 조사는 진행 중이지만, 이를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식의 자세는 취하지 않고 있다.

● 쿠란, 이슬람의 상징물…이번 소각 시위는 이슬람 명절에 발생

무슬림들에게 쿠란은 ‘신의 말씀’을 적은 책이다. 말 그대로 성스러운 책이다. 함부로 훼손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 만질 때도 손을 씻은 뒤, 오른 손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게 원칙이다. 또 쿠란을 읽을 때는 조용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반듯한 자세로 읽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 쿠란을 호칭할 때도 ‘성스러운 쿠란(Holy Quran)’ 혹은 ‘성스러운 책(Holy Book)’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의 상징물, 무슬림들에게 성스러운 책으로 여겨지는 쿠란. 위키피디아

심지어 집이나 사무실의 책장에 꽂을 때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잘 정돈된 책장에 가급적 별도의 칸에 꽂아 둬야 한다. 세속적이거나 가벼운 내용의 대중서 근처에 꽂는 건 적절하지 않다. 김종도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장은 “무슬림들은 쿠란은 가급적 이슬람과 관련된 책들과 함께 책장의 별도 칸에 따로 정갈하게 꽂아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오래돼 사용할 수 없다고 그냥 버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낡은 쿠란은 보통 모스크에 준다. 개인이 직접 처리할 땐, 조용하고 깔끔한 곳에 묻는 경우도 많다. 런던에 거주하는 한 이라크계 영국인은 “너무 낡아서 사용하기 힘든 쿠란을 소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는 사람이 없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쿠란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밟는 건 평범한 무슬림들에게도 용납되기 힘든 행동이다. 반대로 가장 쉽게 이슬람을 모욕할 수 있는 행위가 쿠란을 불태우거나 밟는 것이다. 이슬람은 신이나 선지자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사실상 가장 작은 크기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징물이 쿠란인 셈.

20일(현지 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시위대가 스웨덴 대사관에 난입하고 있다. 이라크는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추방하고, 외교 관계 단절도 시사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바그다드=AP 뉴시스

특히 이번에 발생한 쿠란 소각 시위는 무슬림들의 생활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 근처에서 발생했다. 또 이슬람의 중요한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된 첫 날에 발생했다. 이드 알 아드하는 무슬림들이 선조로 꼽는 이브라힘이 아들 이스마엘을 신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바치려다 (이브라힘의) 깊은 믿음을 확인한 신이 ‘아들 대신 염소를 제물로 바치라’고 다시 명령했다는 이야기를 기념하는 명절이다.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이번 쿠란 소각 사건은 한 마디로 ‘레드라인’을 완전히 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이른바 국민 정서에도 큰 상처를 줬다”며 “주요 이슬람 국가들이 앞 다퉈서 비판 메시지를 발표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과 앙숙인 이란은 모미카가 이스라엘 정보부인 ‘모사드’와 연관 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이란 국영통신사인 IRNA에 따르면 이란 정보부는 모미카가 2019년부터 모사드와 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이란 정보부는 모사드가 지난달 3~4일 20년 만에 이스라엘군이 서안지구(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서 감행한 대규모 군사 작전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쿠란 소각 시위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 이라크에선 종교 지도자도 나서서 스웨덴 비판

이번 쿠란 소각 사태 뒤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이라크의 경우 현지 유명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목소리를 높인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알 사드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시아파 고위 성직자를 지낸 명문가 출신으로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종교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과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라크의 시아파 고위 성직자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스웨덴은 이슬람에게 적대적이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라크에서 격렬한 반스웨덴 시위가 일어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위키피디아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이로 인해 사담 후세인 정권(1979년 7월~2003년 4월까지 대통령 역임‧미국의 침공 뒤 도피 중이다 2003년 12월 미군에 붙잡혔고 2006년 12월 사형 당했다)이 무너진 뒤 이라크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산하에 무장단체도 두고 있을 정도다.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한 뒤, 이라크 안정을 위해 물밑에서 적극 접촉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에 참여한 한 사람이 ‘스웨덴 보이콧’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다. 이들은 덴마크 극우 정당 ‘강경 노선’의 라스무스 팔루단 대표가 스웨덴에서 쿠란 소각 시위를 벌인 것을 막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쿠알라룸푸르=AP 뉴시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알 사드르는 최근 “이라크 정부는 스웨덴과 외교 관계를 끊어야 한다. 스웨덴은 이슬람에게 적대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라크인들이 대거 반스웨덴 시위에 참여하고, 주이라크 스웨덴 대사관에 불을 지르는 과격한 행위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 영향을 줬다.

● 테러에도 영향 준 이슬람 풍자 행위

중동 이민자들이 많은 유럽에서는 쿠란 소각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이슬람 모욕과 풍자(희화화) 행위가 이어져왔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왔고, 무슬림 이민자들로 인한 사회 문제를 많이 겪은 유럽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한 테러도 발생했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2020년 9월 2015년 1월 총격 테러의 원인이 됐던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다시 게재했다. 샤를리 에브도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에서는 2015년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무슬림과 무함마드(이슬람의 선지자)를 풍자하는 만평을 자주 실어 테러 대상이 됐다. 당시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에서 형체를 표현해서는 안 되는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렸고, 이를 희화하는 만평을 잡지에 게재했다. 이를 이슬람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프랑스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를리 에브도의 사무실을 찾아가 편집장을 비롯해 10명을 총으로 살해했다. 2020년에 10월에는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만평을 수업 시간 자료로 활용한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를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살해했다.
2020년 10월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만평을 수업 시간에 활용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살해 당한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그가 근무했던 학교 앞에 놓여있다. 동아일보 DB

2005년 9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테러범으로 표현한 만평을 그렸던 덴마크 만평가 쿠르트 베스테르고르는 2021년 7월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베스테르고르는 동료 만평가 12명과 함께 무함마드를 폭탄 모양의 터번을 쓴 사람으로 묘사했었다. 2008년 주파키스탄 덴마크 대사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8명이 숨졌는데, 가장 큰 이유는 베스테르고르의 만평에 대한 불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임연구원은 “무슬림 이민자가 늘어나는 나라의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이슬람에서 금기시 하는 행위가 부각되는 시위”라며 “이 경우 극단주의자는 물론이고 평범한 무슬림들도 자극하고 더 큰 과격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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