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파탐은 정말 ‘위험한 단맛’일까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7월14일 설탕 대체용으로 널리 사용하는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로 규정했다. 소비자를 의식한 식품업계는 제품에서 아스파탐을 빼기 시작했고, 소비자는 아스파탐이 들어간 식품을 먹지 말아야 할지 당황스럽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음식이 짜고 달면 많이 먹을 수 있고 결국 비만해진다. 비만 그 자체로 암 위험이 커진다. 짜고 달게 먹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스파탐의 발암물질 분류를) 잊고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1965년 미국 화학자가 발견한 감미료인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단맛이 강하다. 설탕의 단맛이 1이라면 아스파탐의 단맛은 200이다. 아스파탐의 열량은 설탕과 비슷하지만, 설탕보다 200분의 1 정도의 양만으로도 같은 단맛을 내므로 사람이 흡수하는 열량은 매우 적다. 이런 이점 때문에 아스파탐은 청량음료·막걸리·요구르트·빵·과자·껌·아이스크림·건강기능식품 등에 널리 쓰인다. 감미료 제조업체들의 모임인 칼로리통제위원회(CCC)에 따르면 아스파탐은 전 세계에서 설탕 대체품으로 약 6000개 제품에 활용된다.
아스파탐, '제2의 사카린' 신세 되나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온 아스파탐이 하루아침에 발암물질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IARC는 수많은 관련 연구 결과를 종합해 발암물질 여부를 결정하는데, 가장 최근의 연구 결과는 지난해 3월 프랑스 소르본파리북대학이 발표한 것이다. 연구진은 2009~21년 성인 10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아스파탐과 암 위험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아스파탐을 먹은 사람은 먹지 않은 사람보다 암 발생 위험이 약 15% 높다는 결과를 내놨다. 특히 유방암 위험은 20%가량 높게 나타났다.
이런 근거로 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물질로 지정했으나 세계 관련 기관은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암협회(ACS)와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아스파탐과 암 발생 사이에 결정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스파탐은 식품 공급망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식품첨가물 가운데 하나다. FDA 과학자들은 승인된 조건에서 아스파탐이 사용될 때 어떤 안전성 우려도 없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아스파탐은 발암 가능성이 있지만 암을 유발한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일반인이 듣기에는 모호한 내용이다.
그래서 IARC도 아스파탐을 2B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나 직업 등은 관련 연구 결과들을 근거로 등급이 매겨진다. 1군은 인체에 발암 증거가 충분한 경우다. 술·담배·대기오염·가공육(소시지·햄·베이컨 등)·방사선·햇빛(자외선) 등 126가지가 1군에 포함된다. 2A군은 인체에 발암 증거가 제한적이지만 동물실험에서는 발암 근거가 충분한 적색육(소고기·돼지고기·양고기 등), 야간근무, 튀긴 음식, 65도 이상 뜨거운 음료 등 94가지다. 이번에 아스파탐이 포함된 2B군은 인체에 발암 증거가 제한적이고 동물실험 근거도 불충분한 가솔린 엔진 매연, 절임 채소, 납 등 322가지다. 3군은 인체와 동물에 발암 증거가 불충분해 미분류로 묶은 프린트용 잉크, 미네랄 오일, 수은, 가죽 가공 등 500가지가 포함돼 있다.
"2B군 발암물질, 발암성 입증되지 않은 그룹"
이 분류 등급으로만 보면, 한강 변 잔디밭에 앉아 햇볕을 즐기며 치맥(치킨+맥주)과 김치를 먹는 행위는 발암 위험이 상당히 높다. 방사선·자외선·튀긴 음식·술·절임 채소 모두가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발암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등급의 발암물질이라도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접하냐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담배와 가공육은 모두 1군 발암물질이지만 가공육 과잉 섭취로 인한 암 사망자보다 흡연으로 인한 암 사망자가 수십 배 많다. 끼니마다 가공육을 먹지는 않기 때문에 가공육을 접하는 빈도도 담배보다 낮다.
또 발암물질 분류 등급은 확실성에 따라 분류된다. 즉 1군 발암물질은 여러 연구를 통해 암을 일으킬 근거가 확실하고 2군 발암물질은 발암 확실성이 적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발암 근거가 얼마나 확실한가에 따라 발암물질 등급이 나뉜다. 그동안 일부 식품학자·의사 등은 국민에게 발암물질의 위험성만 강조해 왔다. 그 탓에 '발암물질=암 또는 죽음'이라는 인식이 심어졌다. IARC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즉 발암물질 등급은 정부와 학계에 보내는 메시지다. 즉 1군에 대해서는 그런 물질을 줄일 정책을 세우라는 것이고, 2군에 대해서는 연구를 더 진행해 실체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IARC의 발암물질 분류는 발암물질을 접하면 암에 걸려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1군 발암물질인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크림을 바른다. 그러나 선크림이 피부암을 낮춘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선크림이 자외선을 차단하므로 피부암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아스파탐도 마찬가지다. 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파악한 정도다. 만일 발암성이 확실하게 밝혀졌다면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됐을 것이다. 게다가 발암물질 분류는 추가 연구에 따라 수정된다. 한번 발암물질로 분류됐다고 영원히 발암물질로 고정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카린이 대표적인 사례다. 설탕보다 단맛이 300배 강한 사카린은 1987년 2B군으로 분류됐다가 1999년 3군으로 재분류됐다. IARC가 오랜 기간 들여다봤지만 사카린의 독성은 입증되지 않았고, 유럽식품안전청도 1995년 사카린이 인체에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재평가했다. 사카린은 뒤늦게 발암물질이란 누명을 벗었으나 사실상 시장에서는 퇴출당한 후였다. 허울뿐인 명예 회복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커피도 1991년 2B군 발암물질로 분류됐다가 25년 만인 2016년 제외됐다. 이번에 논란이 된 아스파탐이 '제2의 사카린'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IARC는 아스파탐을 2B군 발암물질로 분류하면서도 "우리가 평가한 데이터는 아스파탐의 기존 하루 섭취 허용량을 변경할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아스파탐의 하루 섭취 허용량을 기존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유엔 산하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가 정한 아스파탐 하루 섭취 허용량은 체중 1kg당 40mg 이하다. 이 기준은 체중 70kg인 성인이 하루에 아스파탐 함유량이 200mg인 탄산음료를 14캔 넘게 마셔야 초과하는 허용량이다. WHO가 제시한 하루 섭취 허용량은 체중 1kg당 50mg 이하다. 하루 섭취 허용량은 그 이상 섭취한다고 해서 반드시 암에 걸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준 이하로 섭취할 때 안전함을 확인했다는 의미의 기준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아스파탐 섭취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식품 전문가의 조언이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2B군 발암물질은 사람과 동물에서 발암성이 입증되지 않은 그룹이다. 따라서 아스파탐을 먹으면 바로 암에 걸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한 것은 최근 '제로' 열풍이 불면서 합성 감미료 사용이 증가하고 합성 감미료를 지나치게 맹신하는 데 대한 경고 차원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양념으로 들어가는 아스파탐 가이드 필요
그렇다면 한국인은 하루에 아스파탐을 얼마나 먹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공개한 '2019년 식품첨가물 기준·규격 재평가 최종 보고서'를 보면, 우리 국민의 아스파탐 섭취 수준은 하루 섭취 허용량(40mg/kg)의 0.12% 정도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된 아스파탐의 하루 섭취 허용량을 변경하지 않고 기존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IARC가 2015년 가공육과 적색육을 각각 1군과 2A군 발암물질로 분류했을 때도 국내 하루 섭취 허용량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식약처는 아스파탐을 너무 많이 먹으면 두드러기·혈관육종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과다 섭취를 규제하고 있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음식이나 가공식품 등에 양념으로 들어가는 아스파탐에 대해서는 식약처가 가이드를 제시하고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아스파탐을 첨가한 콜라나 막걸리 등은 꼭 먹지 않아도 되는 기호식품이다. 일반인은 이런 기호식품 섭취를 줄이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당뇨병 환자가 설탕 대신 아스파탐을 장기적으로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최근 "당뇨병 환자가 설탕이나 시럽 등의 첨가당 섭취를 줄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 첨가당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단기간의 비영양 감미료 사용을 제한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으나, 비영양 감미료의 고용량 또는 장기적 사용은 현시점에서는 권고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발표했다. 또 궁극적으로는 당류가 포함된 식품뿐만 아니라 비영양 감미료가 포함된 식품의 섭취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영양 감미료란 인공감미료라고도 불리며, 설탕보다 강한 단맛을 내지만 열량이나 탄수화물 함량은 설탕에 비해 적어 비만·당뇨병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이 찾는 식품첨가제다. 최근 논란이 된 아스파탐을 비롯해 스테비아·수크랄로스 등이 비영양 감미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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