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도 찜통 비닐하우스…네팔 청년 “선풍기 없고 물도 안 줘요”

김윤주 2023. 7.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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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후재난에 취약한 이주노동자들
19일 낮 경기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가 41도까지 오른 모습.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측정한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의 7월19일 낮 2시58분 기온은 30.7도. 하지만 같은 시각, 같은 지역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안 온도는 41도가 넘었다. 이날 환경단체 ‘환경정의’와 <한겨레>가 함께 찾은 포천시 가산면 비닐하우스 내부는 찜통과 다르지 않았다. 7월 중순 폭우가 이어지다 이날 경기도엔 폭염주의보(하루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가 내려졌다. 높은 습도 탓에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타이(태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훔쳐내기에 바빴다. 이곳엔 선풍기조차 한 대도 없었다.

인근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 니르말(가명·29)의 일터 환경도 다르지 않다. 니르말은 선풍기도 없는 비닐하우스 안과 바깥 밭에서 쪼그려앉아 잡초를 뽑거나 작물을 수확하고, 농약을 치는 등의 일을 1년째 하고 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실외와 바깥보다 온도가 높은 비닐하우스 안 양쪽을 오가며 일하는 그는 무더운 날이면 두통과 어지러움 같은 증상을 흔하게 겪는다고 했다. 니르말은 이날 하루 2리터 물을 5병을 마셨다고 했다. 물도 따로 제공되지 않아 직접 산다. “물 사는 데 돈이 많이 들어요.”

니르말은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1시간을 일한다. 그중 휴식시간은 점심을 먹는 1시간뿐이다. 폭염주의보나 호우경보가 발령됐다는 재난문자를 받은 날에도 노동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네팔에서도 농사일을 한 그는 고향 날씨가 더 덥지만 쉬면서 일할 수 있어 한국에서보다 덜 힘들었다고 말했다. “네팔이 더 더워요. 네팔 계속 일 안 해 괜찮아요. 여기는 계속 일해요. 사장님은 더울 때 일 안 해요. 니르말, 많이많이 더워도 일해. 비 많이 와도 일해.”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에서 폭염에 취약한 사업장 노동자에게 물을 제공하고, 폭염경보·폭염주의보 등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1시간 주기로 10~15분간 규칙적인 휴식 시간을 주라고 권고하지만 이주노동자 일터에선 이런 내용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환경 탓에 이주노동자는 온열질환에 취약하다. 국무조정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 당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18년 펴낸 ‘수요자 중심 맞춤형 폭염 대응방안 마련’을 보면, 2015년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온열질환 발생률은 1만명당 11.5건으로 2.8건인 내국인에 견줘 4.1배 높았다.

경기 포천 가산면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네팔인 이주노동자 니르말(가명)이 19일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에 마련된 자신의 숙소에 앉아 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일터뿐 아니라 주거지도 폭염이나 폭우 같은 기후재난에 취약하다. 니르말은 일하고 있는 농장 안 비닐하우스 한곳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그의 숙소는 겉에 검은색 차광막(햇빛을 막기 위한 막)을 두른 것을 제외하면 농작물이 자라는 비닐하우스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방·샤워실로 쓰는 컨테이너와 5평(16.52㎡) 남짓한 방으로 쓰는 컨테이너가 있었다. 컨테이너 공간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바깥 열기 혹은 추운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한 커다란 부직포와 비닐테이프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컨테이너 방 앞 바로 위 비닐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얼마 전 폭우가 내릴 때 이 구멍으로 비가 쏟아졌다. 그 아래로 정리되지 않은 전선들이 노출돼 있었다. 화재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강추위가 계속된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고용노동부는 이듬해부터 농·축산·어업 분야 사업주가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같은 가설건축물(건축법상 임시로 설치한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이주노동자를 새로 고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니르말을 비롯해 여러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김달성 목사는 “(사업주가) 여전히 서류에만 빌라·주택 등으로 써놓고 고용허가를 받은 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며 “(숙소로 쓰는) 비닐하우스에 차광막을 친 것도 더위를 줄이려는 목적뿐 아니라 정부가 항공 촬영으로 불법 건축물을 파악할 때 적발되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니르말 근로계약서에는 숙소가 빌라로 적혀 있었다.

기후재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의 안전을 ‘사장님 선의’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혜빈 환경정의 활동가는 “폭염·폭우 등 기후재난은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더 큰 위협”이라며 “정부가 이들의 노동권과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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