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만에 흙덩이로 발굴된 내 머리, 그 옆의 녹슨 낫 [본헌터⑨]
나의 발굴 단서가 된 낫, 그러나 삽·쇠뭉치와 한패였나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나는 새지기2-2다.
새지기는 성재산 A4-5가 발견된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 110으로부터 10㎞ 떨어진 곳이다. 새지기는 황골에 있다. ‘옛 공동묘지’라고도 부른다. 처음에는 충남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라고 했다. 지금 행정구역명은 염치읍 백암리 96-4다.
나는 성재산 A4-5와 한 달을 사이에 두고 세상에 노출되었다. 성재산 A4-5가 2023년 3월10일, 나는 같은 해 4월9일이다. 성재산 A4-5가 61명의 동료와 함께 나왔다면, 나는 단 한 명의 파트너와 함께 나왔다. 한 가지만 밝혀두자. 나는 일찍 찾아온 사람들 덕분에 4년 전부터 희망고문에 시달렸다. 그렇다. 낫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낫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억겁의 세월을 땅속에서 보내야 했을지 모른다.
낫은 2022년 5월에 발견되었다. 땅을 파는 사람들은 그해 성재산과 새지기 두 곳에 왔다. 뭔가 단서를 찾기 위해 땅속에 트렌치를 넣었다. 시험발굴이었다. 굴삭기로 표토층을 긁어보는 작업이었다. 성재산에서는 허벅지뼈와 정강이뼈가 나왔다. 새지기에서는 낫이 나왔다. 두 곳에서 모두 가능성을 본 것이다.
성재산은 처음이었지만, 새지기는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2019년은 나에게 불운한 해였다. 그해 처음으로 새지기에 사람들이 왔지만, 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5월23일부터 작업을 시작해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이 돼서야 뼈들이 나왔다. 무더위와 장마가 찾아왔다. 끝내 여섯 명이 노출된 것은 9월 초였다. 그 바로 옆에 내가 숨어있었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되었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단풍나무들이 나를 밟고 있었다. 작업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그 단풍나무 밑에 무언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사람들은 3년 뒤 다시 찾은 새지기 땅속에서 나온 낫을 보며 무엇인가 더 나오리라 짐작했다. 낫은 거무스르하게 부식된 상태였다. 그 어떤 연약한 풀도 벨 수 없는 존재였다. 그 낫에도 섬세하게 날카롭고 싱싱하던 날을 자랑하던, 창창하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나 역시 여리고 푸르고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바로 그런 꽃 같은 시절에 이르기도 전에 이곳에서 무너졌다. 낫의 형상을 다시 본다. 질문한다. 낫이여, 너는 나에게 고마운 존재인가 증오의 대상인가. 너는 동무인가 악마인가.
2023년 4월5일부터 단풍나무 여섯 그루가 제거되었다. 그리고 5일 만인 9일, 나는 마지막 단풍나무가 있던 곳에서 흙덩어리가 되어 나왔다. 머리뼈는 지저분한 축구공 같았다. 흙을 빼내자 귀뼈 하나밖에 없었다. 위턱과 아래턱에서 앞니와 송곳니, 작은 어금니 등 여러 치아가 나왔다. 그리고 허벅지뼈와 정강이뼈 조각. 이것이 내 물리적 육신의 전부였다.
사실 2019년 발견된 여섯 명도 마찬가지였다. 새지기는 진흙이 쌓인 둥근 모양의 퇴적층 웅덩이였다. 물이 고이면 잘 빠지지 않았다. 뼈들은 흐물흐물해지고 바스라졌다. 2019년에 발견된 여섯 명, 즉 새지기1-1부터 1-6까지 머리뼈가 나온 유해는 한 명 뿐이었니까. 성별과 나이가 가늠된 이는 각각 두 명뿐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14~15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위턱과 아래턱의 치아를 통해 분석한 결과였다. 치아 뿌리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다고 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키가 몇㎝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뼈들은 아이라는 것만을 증명했다. 아, 함께 노출된 나의 파트너 새지기2-1을 소개해야 할 시간이다. 새지기2-1도 머리뼈가 흙덩어리로 발견되었다. 그래도 나보단 조금 나았다. 귀밑 바로 아래 꼭지뼈와 왼쪽 옆머리뼈가 발견되었다. 위팔뼈와 골반뼈도 나왔다. 새지기2-1은 여성이며 30~34살로 추정되었다. 키는 150.7㎝라고 했다. 새지기2-1과 나는 엉켜있었다. 그렇다면 새지기2-1은 엄마인가. 나는 엄마를 안고 있다가 최후를 맞이했는가.
유품도 이야기해야겠다. 새지기2-1한테는 일본 동전이 나왔다. 구멍이 두 개 또는 네 개인 단추들이 나왔다. 나한테서는 가로 42.5㎜와 세로 45.7㎜ 크기의 장방형 버클과 벨트 가죽이 나왔다. 금속 지퍼 일부와 고무신 밑창 조각이 나왔다. 마지막이 중요하다. 소총 탄두 하나. 그렇다면 나는 총에 맞아 죽었을까. 2019년에도 이곳에서 나오지 않은 탄두였다. 사람들은 아니라고 했다. 나의 마지막 순간을 본 사람들은 총성에 관해 증언하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젖먹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줄 세워져 마을 공동묘지 새지기로 끌려갔다. 죽이러 가는 사람보다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도 아무도 반항하지 못했다.”
“끌려간 사람들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죽을 만큼 몽둥이에 맞은 다음 구덩이에 던져져 흙으로 덮어졌다.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꿈틀거리며 생매장되었다.”
그들은 몽둥이를 이야기했다. 삽을 이야기했다. 추수 뒤 벼 무게를 재는 지렛대 쇠뭉치를 언급한 사람도 있다. 모든 게 농기구였다. 낫, 너는 누구인가. 몽둥이, 삽, 지렛대 쇠뭉치와 한패였다는 말인가.
모내기와 추수기가 되면 학교는 임시 방학을 했다. 바쁜 어른들 틈에서 심부름을 했다. 직접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런 때가 아니어도 우리는 틈틈이 일꾼이 되었다.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갔고, 낫을 들고 나가 잡초를 벴다. 낫은 친숙한 도구였다. 나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멍청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날 엄마 손을 꼭 잡고 올라갈 때 공포에 감전되었다. 마지막 순간에 엄마를 부둥켜안고 눈을 질끈 감았을까. 낫은 무엇을 했는가. 나를 풀처럼 베었을까. 나와 엄마의 목을, 머리를, 옆구리를 사정없이 찍었을까. 그리하여 낫은 시뻘겋게 변해 나와 함께 묻혔을까.
세화를 아는가. 세화는 나보다 열두 살 어린 세 살 아이였다. 띠동갑에 같은 문중이었는지 모른다. 세화는 갓난쟁이 동생 민화를 잃고 살아남았다. 고난과 슬픔을 배우고 성장하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을 읽어보라. 새지기는 세화의 영혼에 새겨졌다. “그리하여 나는 본 것이다. 돌쟁이 동생의 손을 잡고 이쪽을 향해 손짓하는 바로 나 자신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 나와 그 나를 바라보는 나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강을 건널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을 배우기 전에 증오를 배웠다. 강의 저쪽은 증오의 대상일 뿐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철석같이 믿어왔는데, 바로 거기에도 내가 있었다. 나는 분열되었다.”
검은 낫은 말이 없고, 나는 이제서야 입을 연다.
1950년 9월 추석 때 벌어진 일을.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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