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다시 치켜든 ‘세 손가락’…혼돈 속 태국

황경주 2023. 7. 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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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해도 총리가 될 수 없는 내각제 나라가 있습니다.

태국 얘기인데요.

지난 5월 태국 총선에서 승리한 전진당 피타 대표가 총리 자리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군부 독재를 끝낼 수 있다고 기대했던 태국 민심은 분노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에서 알아봅니다.

태국 정치권의 '록스타'로 불렸던 피타의 총리 도전이 결국 실패로 끝났네요.

[기자]

마흔 두 살 싱글대디, 하버드대 출신의 엘리트 개혁가죠.

피타 림짜른랏이 지난 5월 태국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끝내 총리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지난 19일 피타의 의원 직무정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여부가 판결 나기 전까지 의원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건데요.

헌재 결정이 내려질 때 태국 의회에서는 피타를 총리 후보로 올려 투표할지 말지를 두고 토론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직무 정지 결정으로 투표 자체가 무산됐고 피타는 의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앵커]

국민들의 선거 결과를 법원이 뒤집은 셈인데요.

태국 민심이 들끓고 있죠?

[기자]

태국 민주화의 상징이죠.

'세 손가락' 경례 시위가 다시 번지고 있습니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 날 방콕 민주주의 기념비 앞에는 시민 약 천명이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피타 지지자 : "오늘은 우리가 새로운 싸움을 하는 첫날이자, 공룡을 멸종하게 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제1당 대표의 직무가 정지되고 차기 정부 구성은 안갯속인 상황이라 이런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거로 보입니다.

[앵커]

선거에 이겨도 정권을 잡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의아한 일인데, 태국 정치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이었잖아요?

[기자]

태국은 군부의 쿠데타와 정치 개입이 잦은 나라입니다.

기자들이 군부에 '쿠테다를 일으킬 거냐'는 질문을 대놓고 할 정도로 군인이 정권을 잡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현 쁘라윳 총리 역시 2014년 쿠데타 일으킨 뒤, 9년 동안 총리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고요.

그럼 이 군부는 누구에게서 정권을 빼앗을까요?

탁신 전 총리 일가가 이끌고 있는 '프아타이당'입니다.

태국은 20년 넘게 프아타이당이 정권을 잡았다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과정을 반복해왔습니다.

프아타이당은 총, 칼로 권력을 뺏진 않지만, 언론사 폐쇄, 부정부패 등으로 얼룩진 과거를 가지고 있죠.

변화를 꿈꾸는 태국 사람들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앵커]

이 양강구도를 깨고 전진당을 총선 승리로 이끈 사람이 피타잖아요?

[기자]

왕실모독죄를 없애고 군부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피타에게 태국 표심이 기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투표율이 무려 85%에 달했던 지난 5월 총선에서 피타가 이끄는 전진당은 151석을 차지해 프아타이당을 10석 차이로 누르고 제1당이 됐는데요.

특히 수도 방콕에선 33개 선거구 중 단 한 곳만 빼고 32곳에서 승리했습니다.

사실 태국 개혁을 외친 게 피타와 전진당이 처음은 아닙니다.

전진당의 전신, '퓨처포워드당'도 같은 시도를 했습니다.

피타도 2019년 퓨처포워드당 소속으로 선거에 나와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2020년 태국 헌재는 퓨처포워드당이 정당법을 위반했다며 해산시켜버렸고, 당시 당 대표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했습니다.

[앵커]

태국 헌법재판소가 피타의 선거법 위반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잖아요?

3년 전과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자]

전진당과 피타도 퓨처포워드당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군부 진영은 피타가 상속받아 갖고 있는 TV 회사 주식을 문제 삼고 있는데요.

태국에서는 언론사 사주나 주주가 공직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알고도 선거에 나왔다면 선거법 위반이라는 건데, 피타는 해당 방송사가 2007년부터 방송을 중단한 회사라서 언론사로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만약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결 나면 최대 징역 10년과 정치 활동 20년 금지 처분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태국 시민 : "화가 나고 실망했지만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기 때문에 너무 슬프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화를 내며 싸울 것입니다. 저들은 2020년 때처럼 하려고 할 거예요."]

사실 헌재가 제동을 걸지 않더라도 피타가 총리에 무난히 오를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태국 의회는 하원과 상원으로 나뉘는데, 하원 5백 명은 총선으로 뽑지만, 상원 250명은 모두 군부가 지명하도록 하고 있거든요.

상하원 합쳐서 750명이 총리를 뽑는 구조라서, 군부 개혁을 외치는 피타 입장에선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그래도 태국 민주화에 한가지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상원 의원 전부를 군부가 지명하는 이 이상한 제도가 이번 상원 임기까지만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5년 임기의 태국 상원 임기는 내년 5월 만료됩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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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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