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르는 ‘현실 불만’ 묻지마 살인 “사회적 테러…관리 시급”

2023. 7. 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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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 흉기난동범 30대 조모씨 구속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 진술
‘현실 불만형’ 묻지마 살인 잇따라
‘정유정 사건’도 비슷한 유형
“대상 광범위해 더 위험”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살해하고 3명을 다치게 한 조모 씨가 지난 2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살해하고 3명을 다치게 한 조모(33)씨가 구속됐다. 조씨가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가운데, ‘현실 불만’에서 비롯된 흉악범죄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소준섭 판사는 지난 23일 살인 혐의를 받는 조씨에 대해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조씨는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예전부터 너무 안 좋은 상황이었던 것 같다. 제가 너무 잘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조씨가 살인을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차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씨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복용했다고도 했으나 이후 번복했다. 경찰이 실시한 마약 간이시약 검사에서도 음성 판성이 나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검사를 의뢰한 상태다.

조씨는 또 폭행 등 전과 3범으로, 법원 소년부에 14차례 송치된 전력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씨 진술 등을 토대로 보면 이번 사건은 현실 불만에서 비롯된 ‘사회적 테러’라는 시각이 주로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모든 (범행) 이유를 내 탓이 아닌 사회 때문으로 돌리며 범죄 이유를 합리화하는 현실 불만형 범죄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 역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의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시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실에 대한 개인의 불만이 흉악 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은 국내에서도 수차례 반복돼 왔다. 지난 5월 과외 중개 어플리케이션으로 알게 된 20대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사건 역시 검찰 통합심리분석 검사 결과 불우한 성장 과정 등으로 억눌린 내적 분노를 표출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서울 양천구에서 30대 남성이 한 옥탑방에 침입해 가장을 살해했던 사건도 비슷한 유형이다. 이 남성은 ‘피해자 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듣고 불행한 내 처지와 비교돼 분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신림역 인근 골목에서 지난 21일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

현실 불만형 묻지마 살인은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범행과 달리 피해 규모가 커지기 쉬워 대책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젊은 남성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린 피해자 4명은 모두 20·30대 남성이다.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상인 A씨도 “(피의자가) 칼을 들고 걸어가다 커플이 지나가자 뒤쫓아가 남자만 찔렀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복의 경우 특정한 범죄 대상이 있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불만을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다면 대상이 없어 범죄 규모가 커질 수 있다”며 “젊은 남성만 노렸던 이번 사건도 자신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대상 전반을 표적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찰에서도 앞서 이 같은 묻지마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대응은 없는 상태다. 지난해 1월 경찰은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공식 용어를 ‘이상동기 범죄’로 규정하고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묻지마 범죄에 대해 명확하게 개념 정리가 되지 않은 데다 검찰, 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가 관련돼 있어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당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서 이상동기 범죄를 별도로 분류하겠다는 계획도 나왔지만 무산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수사 담당관마다 다르게 판단할 소지가 높아 실현되지 못했다”고 했다. 현재 해당 TF는 이상동기 범죄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할 시 경찰 기능별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1년 6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별도의 통계 등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웅혁 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개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 등에 따른 개인의 돌발행동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사회적 위험 신호인 걸로 봐야 한다”며 “묻지마 범죄를 저지를 잠재성이 있는 전과자 등에 대한 관리 및 예방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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