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컨설턴트 윤태곤의 ‘시샘’으로 시작된 ‘자뻑’ 육아 성공기

김현미 기자 2023. 7. 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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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아이를 제 엄마만큼 사랑할 수 있다. 모성애만 전부라는 증거가 있나? 꼬물거리는 이 아이가 번듯한 사람으로 자라는 데 내가 큰 몫을 하고 싶다. 이 아기가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어른으로 커나가는 그 힘들고도 행복한 시간과 공간들 한가운데 나도 있고 싶다. 한쪽으로 비켜서 있기 싫다.”(‘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에서) 

시작은 시샘이었다. 아이를 열 달간 배 속에 품다가 힘들게 낳아 젖까지 물려 키우는 엄마와, 유전자를 절반 제공한 것 말고는 별로 기여한 바 없이 아빠가 된 남자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하지만 미루고 미루다 결혼 7년 만에 첫아이를, 그것도 마흔두 살에 얻은 딸 이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윤태곤의 마음속에서 "아빠조차도 끼어들 틈 없는 아이와 엄마 사이의 밀착감과 충만함에 대한 시샘"이 발동했다. 아이와 엄마 사이의 그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기저귀 가는 법, 분유 타는 법, 열 재는 법, 목욕시키는 법은 어디서 배우나. 자기 아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아버지를 본 적이 있던가. '안 해봤으니 모르고 모르니까 안 가르쳐주는 거다’라는 생각에 이르러 이 늦깎이 아빠는 독학 모드에 돌입했다. 책을 보고, 유튜브로 익히고, 아내한테 물어보고 자꾸 해보니까 어라, 된다. 어느새 모유 수유 말고는 다 해봤고 뭐든 다 할 줄 안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아빠가 돼 있었다.

올해 이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그는 지난 8년간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관하여 알게 된 것과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한 것들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헤이북스)다.

딸의 웃음 독점할 때 샘솟는 도파민

이진이가 만들어낸 샌드위치 놀이. 아빠는 블루베리잼, 이진이는 따뜻한 올리브유를 품은 당근, 매트리스는 식빵
아빠 윤태곤의 직업은 정치컨설턴트다. 정확히 소개하면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당장 내년 4월 치러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불어닥친 신당 창당 바람에 대해 "새로 문을 연 식당은 손님을 유혹할 메뉴가 있어야 한다"(SBS 라이브 방송 '정치컨설팅 스토브리그’ 출연)고 조언하고, 더불어민주당 분열 조짐에 대해 "역대 최강 전직 대통령(문재인)을 중심으로 위태하게 유지돼온 균형점이 무너진다면 전면적 공천 경쟁과 맞물려 '야권의 아마겟돈’이 펼쳐질지도 모른다"(‘신동아’ 8월호 '윤태곤의 총선 읽기’)고 예측하는 게 그의 본업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육아 에세이라니!

이진이가 태어난 2016년 9월 19일 아침의 결심 그대로 그는 딸이 커가는 동안 한쪽으로 비켜서 있기는커녕 '어렵고 힘들지만 행복하고 충만한 아빠라는 신세계’에 깊숙이 발을 내디뎠다.

"아이가 엄마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빠도 좋아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욕망의 충족이 저의 육아 전략이었습니다. '어차피 너나 나나 다 처음이다. 두고 보자’며 반역의 욕망을 키워나갔죠. 이진이가 신생아 시절, 아내에게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였어요. 반대로 아내의 지시 없이 할 수 있는 육아 항목이 하나씩 늘수록 처음엔 겁도 났지만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아이가 오롯이 나만의 돌봄 속에서 까르르 웃을 때 도파민이 마구마구 생성되는 것을 느꼈죠."

그가 막 아빠가 된 후배나 조카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있다. "육아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이다.

"돌봄을 엄마 몫이라고 생각하면 나중엔 정말 아빠 몫이 없어집니다. 초반에 진도를 놓치고 그것이 누적되면 나중엔 재미가 없어서 수학을 포기하게 되는 것과 같죠. 처음엔 부부가 똑같이 서툴지만, 그때 포기해버리면 엄마는 점점 실력이 늘고 아빠는 점점 어색해지다가 나중엔 '저리 가’ 소리나 듣는 신세가 됩니다."

아이가 첫돌을 넘기고 어느덧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달래는 일에 익숙해지면 아빠 노릇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제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윤태곤은 아이의 성장 속도가 '퀀텀 점프’를 하는 이때야말로 아빠의 공간이 확 넓어지는 시기라고 말한다. 아이의 체중이 늘고 활동량도 늘어나는 만큼 물리적 스킨십으로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엄마보다 아빠가 유리하다. 아빠에 대한 아이와 엄마의 의존도, 존재감을 동시에 높일 기회인데 그가 놓칠 리 없지 않은가.

"단둘이 있을 때 엄마 없다고 울고불고하던 아이가 심심해져서 아빠랑도 놀다가 갑자기 지쳐 잠이 든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단풍잎 같은 손을 잡고 꼭 감은 눈의 긴 속눈썹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렇게 이쁜 아이의 아빠라니, 나 혼자서 이렇게 아이를 잘 돌보다니!’라는 '자뻑’에 빠지게 된다. 과하지 않은 '자뻑’은 중요한 모티베이션이다. 그러다 보면 엄마가 돌아와도 아이가 본체만체하고 계속 아빠와 노는 때가 올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내가 섭섭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섭섭함이 나의 만족감과 뿌듯함을 높여준다. 아빠로서 퀀텀 점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에서)
듣다 보면 이진이를 두고 아빠와 엄마가 경쟁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빠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을 높이는 가장 전략적인 방법은 '아내의 칭찬’이고 두 번째는 '독박 육아’ 수행에 성공한 뒤 찾아오는 자신감 상승이다.

과잉보호, 투사, 보상 심리 삼총사와 '딸 바보’

초등학교 입학 전 ‘정신력, 체력,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증진을 위한 가족 워크숍’이라는 긴 제목을 단 이진이의 해외여행지에서
윤태곤이 '자뻑’ 모드에 빠져 있을 즈음 이진이는 어린이집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내심 '이진이가 천재성을 드러내면 영재교육 같은 걸 시작해야 하나?’ 고민한 것도 잠시, 이진이는 아빠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겼다.

"100여m 남짓한 등·하원 길에 꼭 잡은 보드랍고 말랑한 이진이 손은 휴대전화 고속충전기처럼 따뜻함과 사랑을 내 손으로 충전시켜줬다."

만족스러운 어린이집 생활을 마치고 이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아빠의 시샘이 다시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이들은 결혼할 수 없지만 스무 살 돼서 결혼하는 건 불법 아니지?"

이진이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쓰라린 마음을 달래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과잉보호, 투사, 보상 심리’ 삼총사구나 싶더라고요."

그는 남들한테 '딸 바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딸을 많이 사랑하는 아빠’를 넘어 '자기 딸만 최고로 여기고 싸고도는 아빠’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자성하곤 했다.

"부모의 사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체로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칠 때입니다. 아이를 과잉보호해서 자립을 방해하거나, 자신의 욕망과 열등감을 투사해서 아이를 힘들게 하거나,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집착하는 행동 모두 부모의 사랑이 넘쳐나서 벌어지는 일들이죠.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빠구나 싶을 때 도대체 '딸을 잘 키우는 것’은 무엇인지, '딸의 좋은 아빠’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어요."

이진이의 초등학교 첫 하교 길.
세상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를 규정하는 4가지 조합이 있다. 아빠와 딸,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 역사적으로 '아빠와 아들’은 최강 조합이다. 오로지 아들에서 아들로 '대를 잇는’ 것만이 정통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모자지간도 장자나 상속자를 낳은 여성의 권력을 규정하는 관계이며, 모성애는 가부장제보다 더 오래된 권위라는 점에서 강력하다. 모녀지간은 정통성이나 권력 승계와는 무관하지만 출산과 모성애로 결합된 관계다. 반면 이런 이해관계로부터 가장 멀고 가장 존재감 없는 게 부녀지간이다. 역사적으로도 바람직한 부녀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서사에서 딸의 아빠는 대부분 부정적인 역할이다.

"그나마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평원왕 정도가 괜찮은 편이고, '효녀 심청이’의 심학규나 '바리데기 공주’의 오구대왕처럼 딸의 등골을 빼먹는 아빠들만 나와요. 그런데 '딸 바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이 달라졌잖아요. 아빠의 지위가 바뀌고 딸의 지위가 바뀌었어요. 아빠는 저 위에서 내려오고 딸이 저 아래에서 올라와 이진이와 내가 만난 것이니 우리의 결합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다! 부녀지간의 의미를 새로 쓰고 싶었죠."

그가 새로 쓰는 부녀지간에 꽂힌 사이 이진이로부터 '의문의 일패’를 당하는 일이 생겼다. 평소 그는 이진이가 "아빠는 윤씨이고 엄마는 이씨인데 나는 왜 윤씨야?"라고 물으면 성씨와 가문에 대해 설명해줄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그날이 왔다.

"아빠, 부산 할아버지 위에 왕할아버지 위에 그 위에 위에 위에 파평 윤씨 제일 위에 할아버지는 누구야?"

"응. 그 할아버지는 파평 윤씨 시조라고 하는데, 우리 시조 할아버지 이름은 '신달’이야. 아주 옛날 고려시대 때~."

"그럼 신달 할아버지 부인, 파평 윤씨 첫 할머니는 누구야? 그다음 할머니는?"

모르기도 하거니와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시조 할머니에 대한 질문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가 있으면 할머니도 있을 거 아냐? 그러니까 자손이 생기지."

"그러게. 왕왕왕할머니도 계셨을 건데 옛날 조상들이 기록을 안 해둬서 알 수가 없어."

허를 찌르는 아이의 질문에 적당히 얼버무려 답하면서 그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이진이를 낳기 전에는 '나는 내 아이 인생의 훌륭한 컨설턴트가 되겠다.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자기 인생을 잘 개척할 수 있도록 해법과 내비게이션을 쥐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실제 애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오히려 어린 딸과 함께 그 자신도 성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까먹을 사랑이 있어야

7월 13일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 저자 강연회.
"이진이 첫 하교 길. 둘째, 셋째를 입학시킨 부모들은 느긋한 표정으로, 첫아이를 학교에 보낸 부모들은 흥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후자(오늘 등교는 이진이 엄마가 시켰고 하교는 내가). 후문 앞에서 기다리던 삼사십 명 가운데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10% 이하."(3월 3일 페이스북)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얼마 전에는 월요일 미술, 화요일 창의수학, 수요일 우쿨렐레로 3일 내리 딸의 '방과후학교’ 공개수업에 참관하고 소감을 올렸다. 내용이 알차고 선생님들 실력도 좋은데 주 1회로는 '축적’이 쉽지 않으니 주 2~3회로 집중 수업을 하는 게 어떨까라는 정치분석가다운 의견까지 보탰다(5월 11일).

딸의 웃음을 독점(?)할 때 더 신나는 아빠의 속내도 감출 생각이 없다.

"샌드위치 놀이. 아빠는 블루베리잼, 본인은 따뜻한 올리브유를 품은 당근, 매트리스는 빵이라 함. 나는 재밌는데 학생이 하기엔 좀 유치한 놀이 아닌가도 싶고(본인은 아니라고 함). 어쨌든 아침부터 계속 이진이와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며 놀고 있는데 나른하니 좋구나."(3월 25일)

정치컨설턴트로서 그는 평소 '지지율’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방송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왜 중요한가요?"라는 질문에 "지지율이 중요한 이유, 지지율을 높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까먹기 위해서예요"라고 대답했다. 지지율이 높아야 당장 인기는 없어도 꼭 필요한 정책을 실행할 수 있고, 적정 지지율이 유지돼야 정치적 실수나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가 발생해도 버틸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다.

"부모도 평소 지지율이 높아야 교육과 훈육을 할 수 있어요. 아이가 좋아한다고 매일 동영상만 보고 과자만 먹게 할 순 없잖아요. 지지율이 높은 부모가 야단을 치면 아이는 울다가도 금방 잊고 웃으면서 안겨요. 사랑하니까 그랬겠지 하는 거죠. 반대로 평소 얼굴도 보기 힘든 아빠가 갑자기 숙제 검사하면서 야단을 치면 억하심정으로 '이 인간이 왜 갑자기 아빠 노릇한다고 나를 괴롭히냐’고 원망하겠죠."

이것이 "왜 아빠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야 할까"에 대한 답이자 정치컨설턴트 윤태곤이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를 쓴 이유다.

"내 사랑으로 자식이 잘 자라고, 자식이 내 사랑을 잘 수용해서 좋아하고, 그래서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좋은 사랑이 아닐까."(‘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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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윤태곤

김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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