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역할 분담…수준높은 ‘문명’ 가르쳐[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023. 7. 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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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8) 사교육
공자 ‘논어’
공교육 관리·엘리트 양성 목적
직무·도덕역량 등 현실에 집중
국가운영엔 문명 수준 제고 필수
사교육 통해 순수학문 진보 일궈
게티이미지뱅크

군자 하면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저 옛날에는 관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공자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관리가 되기 위한 조건은 직무역량과 도덕역량의 겸비였고 군자는 이 둘을 모두 갖춘 이를 가리켰다.

관리에게 직무역량과 도덕역량을 함께 요구한 까닭은 국가 운영에 둘 다 필요해서다. 이는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저 옛날 민간의 힘만으로 이 둘을 다 갖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꽤 이른 시기부터 국가가 나서 경세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다.

기록에 의하면 하나라, 상나라 같은 고대 왕조 시절에 ‘상(庠)’ ‘서(序)’라 불리는 교육기관을 수도에 두고 통치계층의 자제를 가르쳤다고 한다. 기록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4000여 년 전부터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 곧 공교육이 존재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엘리트 교육이었다. 국가 통치의 인적 바탕인 관리 육성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운영은 오롯이 통치계층의 몫이었기에 교육은 왕실로 대변되는 통치계층에만 해당되었다. 교육이 관의 울타리 안에 머물던 시절의 얘기다.

공자 때 이러한 ‘관학(官學)’의 시대가 와해되고 ‘사학(私學)’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단적으로 사교육이라 부를 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민간에서 관리가 아닌 자도 교육할 수 있게 되었고, 공자가 ‘논어’에서 신분을 따지지 않고 수업료만 내면 누구든 가르쳤다고 고백했듯이 선생에게 교육은 쏠쏠한 생계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또한 공자의 시절에도 교육을 통해 관리가 되면 다른 직업에 비해 안정적인 삶이 가능했기에 사교육의 수요는 지속되었다. 물론 공자는 성현의 말씀을 삶에서 구현한다는 교육 지향을 분명히 하였지만, 사교육이 등장 초기부터 지배 엘리트가 되는 가성비 좋은 길로 활용되었음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교육은 국가 통치를 위한 인재 양성이란 차원에서만 필요했던 건 아니다. 공자 이전부터 백성의 교화가 군주의 존재 이유로 설정된 데서 보이듯이 국가는 사람을 인간답게 살도록 이끄는 교육도 수행해야 했다. 그리하여 맹자는 군주에게 백성이 안정적으로 살도록 일정한 소득을 지닐 수 있게 해준 다음, 고을마다 학교를 세워 그들이 인간답게 살도록 교육할 것을 요구했다. 지배 엘리트의 양성만을 목표로 했던 공교육의 또 다른 역할이 제시된 셈이다. 이제 공교육은 지배 엘리트의 양성이라는 수월성과 인간다움의 기본을 갖춘다는 보편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다 충족했다고 할 수는 없다. 국가 운영에는 문명 수준의 제고가 필수적이다. 기존의 문명 수준에 만족했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이기에 그러하다. 따라서 공교육은 국가의 문명 수준을 높이는 과업도 수행해야 했다. 문제는 문명 수준의 제고에는 순수학문같이 현실 정치와 직결되어 있지 않은 분야의 진보도 필요했다는 점이다. 관리를 양성하는 엘리트 교육에서 이 분야까지도 담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공자가 행한 사교육은 이 점에서 의의가 자못 크다. 공교육이 제대로 담당해내지 못한 문명 수준의 제고를 사교육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송대 이후 전국 곳곳에 세워졌던 서원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지난 시절 사교육은 높은 수준의 문명 교육의 어엿한 한 축이었다. 이러한 전통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사교육이 온통 악인 양 지탄받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공교육이 미처 담당해내지 못했던 높은 수준의 문명 교육과는 벽을 쌓고, 안정되고 부유한 삶을 위한 방편으로만 기능했기에 그러하다.

그렇다고 사교육을 무조건 근절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적어도 지난 30년 넘게 공교육이 보편적 시민을 길러내는 데, 양식 있는 지배 엘리트를 양성하는 데, 높은 수준의 문명 교육을 수행하는 데 그다지 신통치 못했던 우리의 현실에서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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