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재 배출한 서양 교양교육 모태[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이소크라테스 ‘안티도시스’
아테네 가정서 사회규칙 등 배워
정책 논의했던 민회가 공교육 역할
이소크라테스·플라톤 학원 설립
말 잘하는 사람 키우며 ‘부’ 얻어
수능출제와 관련된 대통령의 한마디가 큰 화제가 되었다.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반향이 이어졌다. 도대체 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교육이 바람직한 것인지, 근본적인 통찰과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에 이르려면 인간 고유의 덕, 즉 아레테를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아레테는 ‘탁월성’으로도 번역되곤 하는데,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에서 그것은 두 가지로 제시된다. 하나는 직업을 수행할 기능적 탁월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적 품격이다.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직무역량과 도덕역량을 함께 갖춘 사람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당시 아테네에는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실현할 수 있는 공적 교육제도가 없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통치자와 수호자를 키워낼 체계적인 공교육 모델을 제시했다. 궁극적으로 엘리트 교육이었지만, 모든 아이를 함께 지내게 하면서 몸과 마음, 지성을 균형 있게 교육하여 사회에서 각자 제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자는 보편교육의 이상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이상적인 국가 안에서나 가능한 꿈과 같은 것이었다. 아테네는 그런 공교육을 시행할 역량이 없었다. 오죽하면 1년에 한 번 비극과 희극 경연 대회가 열리는 디오니소스 극장을 ‘아테네의 학교’라고 했겠는가. 수많은 국가적 제전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법과 정책을 논의하는 민회가 공교육 프로그램을 대신한 셈이다.
고대 아테네는 사교육 중심이었다. ‘사교육’이라고 해서 요즘 우리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다니는 학원을 상상하면 시대착오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가정교사에게 배울 수 있었지만, 부모가 곧 교사인 가정교육이 사교육의 핵심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어른들의 축제나 민회와 법정을 기웃거리면서 어깨너머로 세상을 배웠다.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며 체력을 키우고 사회적 규칙을 익혔고, 부모와 함께 일을 하며 직무 교육을 했으며, 어른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와 전통을 익혔던 것이다.
나름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갖춘 학교를 처음 세운 사람은 이소크라테스였다. 그는 기원전 392년에 아폴론의 성지인 리케이온에 학원을 세웠다. 그가 주목한 것은 로고스, 즉 말이었다. ‘말은 영혼의 그림이다’란 생각으로 말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며 공동체를 세우며, 문명을 이루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의 교육은 성공적이었다.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 각지의 유력 인사들과 그의 자제들이 몰려들었다. 그 덕에 그는 아테네의 전함 건조 비용을 댈 만큼 엄청난 부와 명성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만큼의 부를 누릴 정도로 기여했다고 자부했다. 실제로 그의 제자들은 아테네와 그리스 전역에서 탁월한 정치 지도자와 학자, 역사가로서 활약했다. 로마의 키케로는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에서는 트로이아의 목마에서 전사들이 쏟아져 나온 것처럼 수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양교양교육의 모태는 이소크라테스의 학교였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그의 교육적 이상은 ‘교환소송(Antidosis)에 관하여’라는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소크라테스가 학교를 세우고 7년 뒤에 플라톤은 아테나 여신의 성지인 아카데미아에 학원을 세워 이소크라테스 학원과 경쟁구도를 이루었다. 그곳에서 축적된 교육 콘텐츠는 서양철학사의 큰 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원전 334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소크라테스의 학원이 있었던 리케이온에 또 하나 기념비적인 학교를 세워 연구와 교육의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낸다. 이 세 사람의 학원이 서양교육이념과 공교육 제도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런 서양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 지도층 인사들이, 아니 우리 모두가 인간과 교육 자체에는 무관심하고, 입시제도와 수능문제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금의 현상은 통탄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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