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명 목숨 앗은 사이클론 살인마 ‘프레디’
때도 없이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덥다. 기록적인 가뭄에 시달리다가도 갑작스러운 폭우로 물난리를 만나기 일쑤다. ‘지능’이라도 있는 듯 스스로 생명을 연장하는 태풍과 몇 달째 이어지는 산불은 또 어떤가? 2023년 전반기, ‘극단적 기후 현상’이 지구촌 전역을 휘감고 위력을 떨쳤다.
최장 기간, 7차례 발달한 사이클론
2023년 새해 벽두, 미국은 유례없이 ‘따뜻’했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은 2023년 1월을 “역대 6번째로 더운 1월”로 규정했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뺀 미 본토 48개 주의 평균기온이 예년 대비 1.78도 높았다. 코네티컷·메인 등 동부 해안가 7개 주에선 역대 가장 더운 1월이었다. 내륙 지방에선 토네이도(용오름) 발생 건수가 1950년 이후 세 번째로 100건을 넘어섰다. 매일이다시피 일기예보가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만큼이나 역대급 ‘오보’가 속출했다.
평균 강수량은 예년에 견줘 13.7㎜가 많은 72.4㎜를 기록했다. 제트 기류를 타고 태평양 상공의 따뜻한 공기가 미 본토로 밀려왔다. 2022년 하반기 역대급 가뭄으로 몸살을 앓던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선 1월 들어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폭풍이 10차례나 몰려오면서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2023년 2월5일 인도네시아 발리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의 드넓은 바다에서 열대성 폭풍(사이클론) ‘프레디’가 만들어졌다. 이내 남인도양을 횡단한 프레디는 2월 말 마다가스카르를 거쳐 모잠비크에 상륙하며 세력을 잃는 듯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인도양으로 돌아간 프레디는 수증기를 듬뿍 품고 더욱 강력해져 3월11일 모잠비크에 다시 상륙한 뒤 말라위 쪽으로 북상했다. 순간 최대 풍속은 시속 220㎞를 넘어섰다. 말라위에서만 12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아프리카 동남부 5개국에서 모두 1400여 명이 프레디의 횡포로 목숨을 잃었다. 프레디는 발생 5주하고도 이틀 만인 3월14일에야 소멸했다. 가장 에너지량이 많고, 여러 차례(7차례) 발달하고, 가장 오래 생존한 사이클론으로 기록됐다.
4월엔 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에서 이상 고온 현상이 관측됐다. 방글라데시·인도·라오스· 타이 등지에선 수은주가 45도까지 치솟았다.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와 모로코 중부 마라케시에선 기온이 38.8도와 41도를 기록하는 등 한여름 날씨가 한동안 이어졌다.
5월 들어선 대서양 건너 캐나다에서 이상 기류가 본격적으로 포착됐다. 서부 앨버타주에서 100건 이상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뿌연 연기가 국경 너머 몬태나, 워싱턴 등 미 서북부 일대까지 번지면서 현지 기상 당국이 대기질 경보까지 발령하기에 이르렀다. 캐나다 산불은 6월 들어 강도를 더해갔으며, 7월17일 현재 모두 4193건의 산불이 발생해 1천만㏊ 이상이 소실됐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속속 전달됐지만, 캐나다 소방당국은 산불 900여 건을 여전히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극단적 기상현상 관련 재난 3656건에서 6681건으로
같은 기간 사이클론 모차가 강타한 미얀마와 파키스탄에선 줄잡아 수백 명이 숨지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나왔다. 발표 주체에 따라 피해 규모 편차가 큰데, 사망자 상당수가 미얀마에서 쫓겨난 로힝야 난민이란 점엔 이견이 없어 보인다. 5월 중순엔 태풍 마와르가 세력을 뽐내며 미국령 괌을 강타해 한국인 관광객 3천여 명이 며칠씩 전기도 끊긴 현지에서 발이 묶이기도 했다.
인구 2억여 명으로 세계 최대 행정구역으로 불리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선 6월 들어 이상 고온 현상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최고 43.5도를 기록한 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타르프라데시와 인근 비하르주에서만 약 170명이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단기간에 환자가 급증하면서 현지 병원에선 병상 부족 사태까지 겪어야 했다.
“최근 태어난 어린이들이 2100년까지 생존하면 극단적 기후 현상을 지금보다 4배 자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구촌 기온이 지금보다 0.1~0.2도만 높아져도 홍수·태풍·가뭄·이상고온 현상 등이 몇 배 더 늘 수 있다.”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은 2022년 3월 펴낸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 기후 현상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표로 확인된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이 ‘긴급사태 데이터베이스’(EM-DAT)를 분석해 2020년 10월 내놓은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당시 보고서에서 UNDRR는 자료에서 사망자 10명 이상, 피해자 100명 이상, 비상사태 선포 등 세 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재난을 20년 단위로 나눠 분석했다. 1980~1999년 이 기준에 부합하는 재난은 모두 4212건이었다. 이로 인해 119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32억5천만 명가량이 각종 피해를 봤으며, 모두 1조6300억달러의 경제 손실을 입었다. 이들 재난 가운데 3656건이 극단적 기상 현상과 관련됐다.
이후 20년, 지표는 더욱 나빠졌다. 2000~2019년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한 재난은 모두 7348건으로, 이전 20년에 견줘 3천 건 이상 늘었다. 사망자는 123만 명, 피해자는 42억 명으로 규모를 키웠다. 경제적 손실도 이전 20년보다 1조3천억달러가량 늘어난 2조9700억달러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극단적 기상 현상과 관련된 재난은 6681건이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 차원의 대응이 늦어지면서 극단적 기상 현상 횟수도 늘고 강도는 더욱 세졌다는 뜻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이권 카르텔’
“기후변화 상황을 늘상 있는 것으로 알고 대처해야지 이상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은 완전히 뜯어고쳐야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 기상 현상이 ‘일상화’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 보조금 따위가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