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을 늘려라” 유네스코와의 약속 지킬 수 있을까
주민들 “재산권 침해”…보호지역 지정도 난관
[주간경향] 2년 전(2021년 7월 31일) 한국 서남해안 갯벌 4곳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순천 등이다. 서울시 면적(605.24㎢)의 약 2배(1284㎢)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를 결정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이들 갯벌과 유사한 가치가 있는 갯벌을 추가로 확대하라고 했다. 비록 권고사항이지만 국제사회와의 약속인 만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과제였다.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해선 대상 후보 갯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사전 지정해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과정이 순탄치가 않다. 일부 지역에서는 규제 때문에 재산권 행사에서 제한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을까봐 우려한다.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내건 조건
한국의 갯벌은 멸종위기종 철새를 비롯해 2169종의 해양 동식물이 살아가는 진귀한 생물종의 보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결정한 당시 제44차 회의에서 “한국의 갯벌은 지구 생물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며,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가치가 크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그리고 두 유산의 성격을 모두 지닌 복합유산으로 구분된다. 한국의 갯벌은 우리나라의 15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은 두 번째 자연유산이다. 등재된 갯벌 4곳 중 신안 갯벌이 1100㎢로 가장 넓다. 나머지 갯벌 면적은 각각 55~68㎢ 안팎이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사항은 크게 3가지다. 유산구역 확대, 통합관리체계 구축, 개발관리 등이다. 첫 번째 권고사항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4곳의 갯벌과 유사한 갯벌을 추가 확보하라는 의미다. 두 번째는 문화재와 해양자원 등을 구분해 관리하는 기존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라는 뜻이다. 현재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관심을 보이는 지자체들은 관련 부서를 통합 중이다. 마지막으로, 개발관리는 갯벌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개발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관건은 갯벌의 추가 확보다. 세계자연유산 자문·심사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결정을 내리기 두 달 전인 2021년 5월 “한국의 갯벌이 철새들이 오가는 중요한 기착지”라면서도 유산 구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반려’ 권고를 했다. 세계유산 자문기구 평가 체계는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로 나뉘는데 반려는 사실상 불합격에 가깝다. 문화재청과 해양수산부는 21개 위원국을 대상으로 향후 유산 구역을 확대하겠다고 설득했고, 우여곡절 끝에 같은 해 7월 말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한국의 갯벌을 올릴 수 있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9개 갯벌을 추가 등재하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주관하는 문화재청은 곧바로 2단계 등재 작업에 들어갔다. 일정대로라면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2026년 개최 예정)에 대비해 내년 1월까지 등재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된 후보지역들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리고, 1년 후인 2025년 1월 ‘한국의 갯벌 2단계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내년 1월 잠정목록 등록 이후 늦어도 9월까지는 신청서 초안을 작성해야 한다. 초안에 등록 갯벌에 대한 분석결과와 지도 등 담아야 할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갯벌 세계유산 관리와 확대 추진을 전담하는 ‘(재)한국의 갯벌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의 문경오 사무국장은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신청한 국가의 국내법이 유산 보호에 적합한지 여부를 심사한다. 우리는 국내법인 습지보전법에 의거해 자연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갯벌을 사전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 주민들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잠정목록에 후보지를 등록하는 것도 지자체 신청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후엔 해당 갯벌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등 세계유산위원회의 자연유산 등재기준에 부합하는지 분석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후보지 선정부터 등재 신청서 작성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추가 등재를 둘러싼 우려
당국이 2단계 등재 후보지로 현재 검토 중인 갯벌은 전남 무안·고흥·여수, 전북 군산, 경기 화성, 인천 강화 등 9~10곳에 이른다. 문화재청은 이중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무안, 고흥, 여수 갯벌을 지난 4월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에 올렸다.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무안, 고흥, 여수 갯벌에 멸종위기종 고유종을 포함해 300종 이상의 생물 종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다고 봤다.
추가 지정 작업은 순탄치 않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지역인데,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습지보전지역 지정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리란 우려가 많다. 예를 들어, 인천 강화는 천연기념물 등 보호를 위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데, 습지보호지역 지정이 추가되면 규제가 더 세질 수 있다고 본다. 인천지역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습지보전지역 지정을 꺼리는 주민들은 추가 규제로 인해 개발이 원천 봉쇄되고, 재산권 행사에서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본다. 일부에서는 주민 편의시설마저 들어서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당장 주민 불편 때문에 섬과 섬 사이를 잇는 연도교를 지어야 하는데,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 이런 기반시설이 영원히 들어서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습지보전지역을 통합 관리하는) 해양수산부와 (문화재보호구역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에서 이러한 기반시설 설치가 갯벌의 생태계나 천연기념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연유산 등재와 무관하게 이런 개발이 가능한지 등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내려줘야 우리도 주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는 인천 갯벌이 갖는 생태적 가치와 지리적 여건 등을 감안할 때 반드시 등재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화, 영종, 옹진, 송도 등을 아우르는 인천 갯벌의 면적은 국내 전체 갯벌(2482㎦)의 29.3%(728.3㎢)를 차지한다. 면적 넓이로만 보면 전남에 이어 두 번째다. 2014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송도 갯벌만 해도 91종, 10만2000여 마리의 물새가 살고, 저어새·원앙·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 10종과 황새·매·청다리도요사촌 등 멸종위기종 15종이 서식한다. 장정구 생태교육센터 이랑 공동대표는 “세계유산 등재기준에는 보편성·탁월성도 있지만 완결성도 중요한 요소다. 건강성과 철새 서식지로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인천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이 되면 중국 동해안, 북한 서해안의 갯벌까지 포함해 서해 연안 전체 갯벌의 가치를 높이게 되고, 나아가 세계유산 등재기준인 완결성까지 갖추게 될 것이다. 이는 국제기구들이 추구하는 (유산의 창출이라는) 방향성과도 일치한다”고 했다.
“추가 규제 없고 정부 지원 늘어”
당국은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되거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더라도 추가 규제는 없다고 강조한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습지보전법 제13조에 따라 공유수면(바다)에서의 매립, 건축물의 신·증축, 흙·모래·자갈·돌 채취, 보호대상 해양생물의 산란지 훼손 등은 제한되지만, 어민들의 어업활동이나 육상 재산권 행사에 대한 제한은 없다. 국내 습지보전지역은 2001년 무안갯벌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15개 갯벌에 지정돼 있다. 전체 면적은 약 1500㎦ 규모다.
장정구 공동대표는 “세계자연유산의 행위 제한은 국내 습지보전법을 근거로 한다. 육상 재산권이나 갯벌에서의 어업활동에 가해지는 제한이 없다.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지자체와 당국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주민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전파가 안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도서지역에 꼭 필요한 기반시설 설치가 개발행위 제한 규정에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온다. 인천시 관계자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고려하는 갯벌(지자체)에 대해서는 습지보호지역 지정에 앞서 당국이 해당 갯벌과 주변지역에 대해 사전조사를 한다. 연도교와 같은 기반시설 설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당 지자체에서 연도교 설치 계획이 있다면 이를 반영한 등재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찬반이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지자체와 함께 지역주민공청회 개최 등을 열어 지역주민 의견을 듣고 적극 설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추가 규제는 없지만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되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 정부 지원이 늘어난다. 해수부와 문화재청은 해양쓰레기와 폐어구를 수거하고, 주민 편의시설을 확충한다. 또 생태탐방로와 방문객 센터 등 생태관광 시설도 설치한다.
인천지역 갯벌의 2단계 등재 추진이 무산될 경우를 대비한 대안도 검토 중이다. 당국 관계자는 “추가 규제를 걱정하는 주민들을 설득해 동의를 얻는 것이 최선의 결과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대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세계유산위원회가 갯벌의 추가 확대를 권고하면서 9개 갯벌의 추가 등재를 주문했을 뿐, 특정 지역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미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다른 지역을 후보지로 검토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서산 가로림만 등을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는데, 해당 지자체에서 등재 신청이 들어온다면 잠정목록 등록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추가 등재 왜 필요한가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고 추가로 확대하려는 근본적인 배경은 정부의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및 2050 탄소중립 로드맵 목표와 맞닿아 있다. 갯벌의 탁월한 탄소흡수 능력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한국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잇따라 등재되면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국내 갯벌의 총면적은 전 국토의 약 2.5%인 2482㎢다. 갯벌의 유형을 구분하면 크게 식물이 살지 않는 갯벌(비식생)과 갈대와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사는 갯벌로 구분된다. 이중 한국 갯벌의 98%는 비식생 갯벌이다.
갯벌의 탄소흡수 능력은 최근 국내 연구진에 의해서 국제사회에 전파되고 있다. 2021년 서울대 김종성 교수 연구팀이 조사·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내 갯벌은 약 1300만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으며, 연간 최소 26만t에서 최대 49만t(연간 최대 자동차 20만대 분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최대치 기준 30년 된 소나무 약 7340만 그루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과 비슷하다.
다만 아쉽게도 갯벌은 현행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지침에서 해양 부문 탄소흡수원으로 인정하는 블루카본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블루카본은 맹그로브숲(열대나 아열대 지역의 갯벌이나 하구에서 자라나는 관목 또는 서식지), 해초대(바닷속 식물인 해초류가 자라는 곳), 염생식물 서식지(염분에 강한 갈대·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자라는 곳) 등을 일컫는다. 비식생 갯벌, 해저 퇴적물, 해조류 서식지는 후보군에 올라 있다.
정부는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감축하겠다는 NDC와 함께 2050년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0)이라는 자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해초대와 염생식물 서식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32㎦ 규모인 염생식물 면적은 2050년 660㎢까지 늘리고, 해초와 해조류는 바다숲을 조성해 2030년까지 현 면적보다 85% 늘어난 54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요한 건 세계 5대 갯벌로 평가받는 한국의 갯벌을 블루카본에 포함시키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 5월 31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블루카본 추진전략에서 비식생 갯벌 등이 블루카본으로 IPCC 인증을 받으면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탄소흡수량에 대한 정보)에 즉시 등재하고, 2030 NDC 실적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블루카본 추진전략은 2030년까지 탄소흡수 목표치로 제시한 2670만t 중 해양 부문에서 106만6000t을 달성하고, 2050년까지 136만2000t까지 늘리는 내용이 골자다. 2022년 기준 해양 탄소흡수량은 약 1만1000t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양생태계 보전과 탄소흡수 능력 등 갯벌의 가치와 우수성은 이미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추가 등재가 순탄하게 이뤄진다면 국제사회로부터 갯벌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블루카본에 포함된다면 정부가 제시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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