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감정을 존중한다는 것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3. 7. 2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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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두 가지

시간이 되었다고 손으로 손목을 가리켰다. 손목시계도 안 하고 있으면서. 아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내려놓았다. 대신 수학 문제집을 집어 들었다. 5분이 지났을까. 무언가를 공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찍찍 긋는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찢는 소리도 났고 "짜증 난다"는 말도 들렸다. 

문제집에 구멍이 나 있다. ⓒ최은경

"아, 짜증 나." 뭐가 짜증이 난다는 걸까. 공부하기가 싫은 걸까. 싫겠지. 그래도 6학년,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 한다는 정도는 아는 나이다.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하기 싫으니 짜증이 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막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는데 너무 이르지 않나? 

뭐 때문에 짜증이 난 걸까. 찢어진 문제집. ⓒ최은경

침대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어릴 때 했던 행동이다. 기분 나쁜 상황을 어쩌지 못할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몸의 반응. 그러고 나면 아이는 좀 기분이 풀린다고 하는데, 감정을 그런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이 나는 영 불만이었다. 방으로 가 "왜 그러냐"라고 물으니, "짜증이 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학 문제집이 풀기 싫어서 그런 거냐?" 아이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 "모른다"라고 말한다. 

"아하, 그렇다면 그분이 오신 거구나. 호르몬님."

청소년기 호르몬님이 또 열세 살 어린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구나, 생각했다. 이럴 때는 나도 방법을 모르겠다. 나에게 어떤 해결 방법을 기대하는 걸까? 아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고요하게 두고 보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을 다물고 만다. 호르몬이 날뛰는데 고요한 마음을 찾는 건 어른도 하기 어려운 행동이지 않나 싶어서.

아이의 행동을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공격적으로 굴던 아이는 이내 조용해졌다. 방에서 무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때 남편이 운동을 나가겠다고 한다. 들어올 때 아이가 먹을 쭈쭈바 하나를 사오라고 말한다. 그제야 아이는 작게 말한다. "쭈쭈바 말고 망고 아이스크림". 다행히 그분이 금세 있다 가셨나 보다. 1시간을 알리는 타이머가 끝나자 아이가 문제집을 들고 왔다. "그래도 꽤 많이 풀었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이에게 그분이 가신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너와의 상황을 방금 글로 써 봤어. 한번 들어볼래?"

이 글을 그대로 읽어줬다. 흥미로운지 재밌게 듣다가도 "5분이 아니라 15분"이라고 내용을 정정했다. 그리고 서운하다는 듯, 억울하다는 듯 "엄마가 장난스럽게 그분이 오셨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더 싫었어. 내가 짜증이 난 상황을 장난스럽게, 가볍게 취급하는 게 더 기분이 더 나빴어"라고 말했다. 자신이 그럴 때는 그냥 두는 게 더 낫다면서. 나도 내 생각을 말했다. 

"엄마는 오히려 진지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다음에 이런 상황이 다시 오면 그때는 참고할게." 

뭐지? 작년만 해도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짜증을 낼 때 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하다고 했던 아이였다. 뭔가 해결해주려고 하기보다 내 마음을 그냥 알아주면 괜찮다고 해서 '그분이 오신 거구나'라고 말한 거였는데 달라졌다. 이제는 마음이 아니라 존중을 원하는구나. 내 마음이 이렇다는 걸 알아주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감정을 존중해 주길 원하는구나. 아이가 그새 또 자랐구나. 성장했구나. 내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구나. 커다래진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렸다.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우리에겐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호기심과 존중'.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나와 다른 문화의 아이들,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아이들을 대할 때도 '호기심과 존중'의 자세가 필요하겠구나 하고. 

존중하려면 내가 견뎌야 하는 거구나. 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구나. 내가 기다려주면 되는 거구나.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더 짜증을 부르는 것은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서도 궁금하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과 존중은 다른 걸까.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짜증이란 감정을 존중했으면 모른 척 하고 견뎠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다음엔 그 순간을 기록해 봐야겠다. 그때 다시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거냐고 하면 어쩌지? 부모가 되는 일은 어째서 이렇게 쉬운 게 하나도 없는 건지.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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