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업그레이드' 페퍼저축은행,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번 2023~24시즌을 준비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올해 4월 박정아와 역대 여자배구 자유계약선수(FA) 선수 최고 조건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주전 세터 이고은을 보호선수로 묶지 않았다. 결국 이고은은 보상선수로 한국도로공사에 이적했다가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페퍼저축은행으로 돌아오는 해프닝을 겪었다.
또한 올해 2월 지휘봉을 새로 잡았던 재미교포 아헨 킴 감독은 부임 4개월 만인 지난달 말 개인 사정을 이유로 사퇴했다. 아헨 킴 감독은 팀 훈련도 한 달 정도만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미국 여자대표팀 감독 출신인 조 트린지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하면서 지도력 공백을 신속하게 메웠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시즌을 준비하는 페퍼저축은행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컴퓨터로 비유하면 한 시즌을 치르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훨씬 업그레이드 됐다.
일단 국가대표팀 주공격수 박정아의 가세로 공격력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시즌 한국도로공사의 기적 같았던 챔피언결정전 역전 우승을 이끌었던 박정아는 3년 총액 23억2500만원(연평균 7억7500만원)이라는 특급 대우를 받고 페퍼저축은행에 새 둥지를 틀었다.
IBK기업은행에서 3차례, 한국도로공사에서 2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견인한 ‘우승 청부사’ 박정아의 가세는 승리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된다. “제일 밑에서 올라가는데 무슨 부담감이 있겠어요”라고 툭 던지는 박정아의 말 속에는 우승을 수없이 해본 베테랑의 여유가 느껴진다.
멤버 구성에서 페퍼저축은행은 나쁘지 않다. 리베로와 세터 포지션에는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오지영과 세터 이고은이 버티고 있다. 외국인선수는 지난 두 시즌 동안 현대건설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야스민 베다르트(미국)다. 허리 부상 우려가 있지만 ‘건강한’ 야스민은 걱정이 없다. 박정아-야스민이 정상 가동된다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갖추게 된다.
하드웨어가 든든해진 만큼 소프트웨어는 더 중요해졌다. 페퍼저축은행의 새 시즌 배구는 트린지 감독의 ‘스마트 배구’다. 말 그대로 영리한 배구를 의미한다. 트린지 감독은 ‘스마트 배구’에 대해 “다른 팀에는 부담이 되지만 우리 팀에는 간단한 ‘기하학’”이라고 설명했다.
다소 난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핵심 키워드는 ‘스피드’와 ‘맞춤 전술’이다. 트린지 감독은 “코트에서 공을 빠르게 돌려 공격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상대 전술을 파악해 쉬운 전술을 짤 것”이라며 “매 라운드 새로운 방식의 전술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팀 훈련에서 트린지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는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트린지 감독은 선수들이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자마자 다양한 미니게임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예를 들면 2대2 게임을 하는데 언더토스로만 랠리를 주고받는다. 랠리가 끝나면 진 팀은 옆 코트로 뛰어가 다시 같은 경기를 치른다. 뒤이어 오버토스로만 랠리를 주고받거나 코트를 3분의 1만 사용하는 미니게임이 이어졌다. 일반적인 연습 경기는 찾아볼 수 없다. 다양한 세부 상황을 만들어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선수들 입에서 “재밌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훈련 시간 내내 트린지 감독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 훈련 중간마다 끊임없이 선수들과 미팅이 이어진다. 마치 대학교수가 제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것처럼 칠판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페퍼저축은행의 배구는 새로운 실험이다. V리그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리그가 막을 올리고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그때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그들의 배구가 성공한다면 한국 배구에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은 틀림없다.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을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트린지 감독은 “리그 첫 경기에서 이기고 매 라운드 발전해 봄 배구에 적합한 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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