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음악하고 ‘마음 울타리’도…발달장애 아이들 예술가로 ‘쑥쑥’

손지민 2023. 7. 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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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어린이병원서 레인보우예술센터 운영
서초구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 레인보우예술센터에서 ‘브릿지 캠프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영화 <어벤져스>의 테마곡을 연주하고 있다. 손지민 기자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 4층에는 노래 ‘마법의 성’을 부르는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줄곧 옆에 앉은 친구와 떠들던 초등학교 3학년 선호(가명)도 장난을 멈추고 어느새 노래에 집중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선호를 비롯해 발달장애가 있는 초·중학생 8~9명이 모인 합창 시간이다. 아이들의 합창이 끝나자 바이올린, 클라리넷, 트럼펫 등 악기를 하나씩 든 청년들이 자리에 앉아 영화 <어벤져스>의 테마곡을 연주했다. 이들도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4층의 다른 치료방에서는 학령기에 접어들기 전 유아들이 음악치료사들과 함께 북을 치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서로 다른 특성들이 어우러질 수 있다. 무지개처럼 각기 다른 개성을 품은 아이들이 함께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이곳은 ‘레인보우예술센터’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서울시어린이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발달장애 소아·청소년의 예술적 재능을 발굴하고, 치료와 교육을 연계하는 레인보우예술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 3월 두 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2.5 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한 80명의 아이가 맞춤형 치료교육을 받고 있다. 그동안 발달장애 아이들의 예술적 재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나 학교는 있었지만, ‘통합예술 치료교육 체계 시스템 모델’을 도입해 특수교육과 사회성 치료, 예술 교육을 통합한 방식은 센터가 처음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과 특수교육사, 예술치료사들이 협업할 수 있어 통합 모델이 가능했다. 학령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까지 생애주기별로 예술, 교육,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센터의 특징이다.

센터는 2009년 시작된 ‘레인보우 뮤지션’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서울시어린이병원 발달센터에서 음악치료를 받던 발달장애 아이들 중 음악적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발굴해 매년 공연을 열던 작은 프로젝트가 시초가 됐다. 레인보우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아이들 45명은 전국 각종 콩쿠르에서 8회 입상하고, 5명은 예술대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연주에 감동해 직접 지도하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발달장애인 이상우(23)씨도 레인보우 뮤지션 출신이다. 이씨를 7살 때부터 담당해온 김명신 음악치료사는 “상우를 포함한 레인보우 뮤지션 아이들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한 결과, 생애주기를 고려한 치료, 예술, 교육 통합 모델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 레인보우센터로 확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음악을 가르치고, 치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에게 심리적 울타리가 됐다. 학교에서 또래들과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선호는 이곳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선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기 시작했고, 2학년 때는 무리를 지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받았다. 3학년이 되자 선호는 결국 “엄마, 나 죽을 것 같아”라는 말을 꺼냈다. 엄마는 선호를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음악심리치료를 받던 선호가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귀띔해준 김명신 음악치료사 덕에 오디션을 보고 센터에 들어왔다. 선호의 엄마 장지연(가명·51)씨는 “아이가 이곳에서는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준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장씨가 바라는 것은 레인보우예술센터가 치료, 예술, 교육을 통합한 대안학교로 발전해 선호가 이곳으로 전학을 오는 것이다. 장씨를 포함한 부모들의 바람을 반영해 서울시어린이병원은 내년 4월 중으로 센터를 대안학교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상은 발달장애 아이들과 경계성 지능을 가진 소아·청소년이다. 대안학교가 되면 이곳에서 예술 교육과 치료를 병행하며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학력도 인정받을 수 있다. 중학생 딸을 레인보우예술센터에 보내는 박호정(가명·50)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만 이해받을 수 있는 학습 환경이 아니다 보니 아이의 과잉 행동은 많아지고 악순환이 반복됐다”며 “아이도 마음이 편하고, 가족도 마음이 편한 이런 대안학교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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