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한 점 하늘, 수화 김환기' 화가를 만나다.
하늘도 서럽고 서운한 구석이 많았나 보다. 매일 장대비가 내리더니 곳곳에 홍수로 산사태와 집이 무너지고 많은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우리 고장 청주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인명 피해를 내고야 말았다. 가슴이 아리고 너무 슬프다. 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 문명을 관리해야 할 사람들의 부주의로 인재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다는 식 위안으로 감당하기에는 아픔이 너무 크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마냥 슬픔만 안고 살아갈 수 없는 것 또한 우리 인간의 태생적 한계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은 슬픔을 이겨내고 마음을 다잡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있다. 이 슬픔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잊지는 말자.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난히도 아침 날씨가 화창하다. 창가에 서성이며 한 오라기 햇살로 우울했던 마음을 위로받고 있는데, 카톡 소리가 요란하다. 메시지가 왔다는 소리다. 용인 호암 미술관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첫 장으로 예술의 꽃을 피운 수화 김환기의 "한 점 하늘" 전을 연다는 지인의 메시지이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적잖은 필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호암 미술관으로 향한다.
일제 강점기 초 전남 신안 작은 섬 안좌도 출신으로 세계 미술의 중심지 파리, 뉴욕에서 한국인으로서 예술의 꽃을 피웠던 수화 김환기 미술전이다. 예술을 금전적으로 계산하는 속물적 근성을 내보이고 싶지 않지만, 미술 옥션 시장에서 한국 미술작품 중 김환기 작품이 가장 고가로 팔렸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은 바다. 그는 한국의 섬과 도자기 문화를 서양 미술의 추상적 틀로 해석해 내는 천재성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화가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초 'K-화가'이기도 하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터라 미술관 주변 정원을 여유롭게 둘러본다. 기대 이상으로 잘 정돈된 정원은 눈을 호강시키기에 충분하다. 수원 화성에 있는 방화수류정을 축성하면서 '아름다움이 적을 이겨낼 수 있다'라고 했던 정조대왕의 말이 떠오르기라도 하듯 아름다운 정원이 필자의 마음을 압도한다.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를 마중이라도 하듯 '한 점 하늘, 수화 김환기'라는 표현이 하얀 벽면에 커다랗게 새겨 있다. 전시실에는 이미 그의 유명세답게 많은 관람객이 그림을 관람하고 있다.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작품 중 '론도'이다. 제목에 걸맞게 음악적 색깔을 담아내기라도 하듯 피아노를 치고 지켜보는 관객들의 모습을 한국적 곡선미로 그려낸 초기 추상적 작품이다. 눈이 시려올 만큼 호강을 누려본다.
필자의 발걸음을 잡은 또 하나 작품은 '여인들과 항아리'이다. 이 작품은 그의 말년 뉴욕에서 고향의 향수를 담은 대작이다. 그 무렵 넉넉지 못한 세간살이와 병들어 가누기조차 힘든 몸으로 어린 시절 물동이 이고 다닌 섬 여인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감내하기조차 힘든 고향의 그리움을 담아낸 것이다. 인상파 화가 반 고흐가 자신이 그린 작품마다 메시지를 담아냈듯이 수화 역시 자신 작품에 대한 상황과 메시지를 기록해 놓은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돌아오는 길에 맛집에 들러 토종 된장국과 보리밥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인근 카페에 들린다. 그동안 소원했던 안부와 속내를 털어놓고 때로는 위로받고 때론 위로해주면서 햇살이 석양으로 뉘엿뉘엿 지는 줄도 모르고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이야기꽃을 피운다.
요즘은 무엇에 쫓기듯이 살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별 중에 유난히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나도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 그 별을 쳐다봐 주는 여유를 가져 봄이 어떨까.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남긴 채 서둘러서 개밥바라기 별 앞세우고 대전으로 향하면서 되뇐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화랑에 들러 그림 한 점 감상하는 여유를 갖자'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분노의 강물로 귀중한 생명을 빼앗긴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마음으로부터 명복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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