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밴드 ‘더 1975’ 무슬림 국가에서 표현한 동성애, 그 파장… “아티스트는 쉽게 떠나고, 부담은 팬들에게?”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박종현 2023. 7.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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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리, 공연 도중 욕설·동성멤버에 키스
말레이시아, 행사 취소·향후 공연 불허
예정된 인도네시아·대만 일정도 취소해
현지법 위반…“자유” vs “팬들만 부담”  

음악 페스티벌 참가→남성 멤버와 무대에서 키스→말레이시아, 공연 불허 처분→인도네시아·대만 공연은 취소→주최 측 “취소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누구 부담?”

말레이시아에서 공연 불허 처분을 받은 영국 밴드 ‘더 1975’(The 1975)가 인도네시아·대만 공연 일정을 취소했다. 동성애가 금지된 국가에서 이를 비난하며 논란을 키웠다가 예정된 다른 나라의 일정마저 취소한 것이다. 공연 불허와 취소는 고스란히 팬들과 주최 측의 부담이 되고 있다. 아티스트의 거침없는 행보가 당국을 자극해 오히려 행사 주최지의 사회적 진보를 방해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영국 밴드 ‘더 1975’의 보컬  매티 힐리가 지난 2022년 8월 28일 영국에서 열린 ‘리딩 뮤직 페스티벌’에서 열창하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 동성 멤버에 키스…“현지문화 가치 훼손 곤란” 

23일 동남아 언론에 따르면 대략의 과정이 유추된다. 이 밴드는 지난 21일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음악 축제 ‘굿 바이브스’(Good Vibes)에 참가했다. 밴드의 보컬 매티 힐리(34)는 무대에서 현지 정부의 동성애 규제를 비난했다. 힐리는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3)와 짧게 교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나는 더 1975를 초청한 나라에서 누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교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망할 놈들”이라고도 했다. 욕설까지 섞어가며 비난하자 야유가 터지기도 했다. 야유에도 힐리는 곧장 동성인 로스 맥도널드와 키스를 했다.

이튿날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흘 예정이었던 음악 축제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더 1975의 향후 말레이시아 공연도 일절 불허하기로 했다. 파흐미 파드질 공보·디지털 장관은 “우리의 법규를 위반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타협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현지 문화의 가치와 전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행사 주최 측은 “(논란 때문에) 오늘과 내일로 예정됐던 2023 굿 바이브스의 남은 일정이 취소됐다”고 확인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동성애 표출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돼 최대 20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이지만,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말레이계 대부분은 이슬람 신도이다.

◆ “아티스트의 과도한 행동은 잘못” 

말레이시아 정부의 일격에 힐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이곳에 왔지만 우리는 잘못된 결정을 했다”며 “쿠알라룸푸르에서 공연이 금지됐으며 나중에 팬 여러분을 만나겠다”고 글을 남겼다.

말레이시아 언론들은 23일 후세인 오마르 칸 슬랑오르주 경찰청장의 발언을 인용해 “더 1975 멤버들이 22일 말레이시아를 떠났다”고 전했다. 경찰당국은 “더 1975에 취해진 조치들 때문에 이들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며 “행사 주최 관계자들을 소환해 이번 사안의 책임여부를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9년 2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브릿 어워드 시상식에서 밴드 ‘더 1975’ 멤버들이 공연하고 있다. 런던=로이터·연합뉴스
말레이시아에서는 더 1975가 현질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과 행동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판자들은 온라인에서 힐리의 자극적인 발언과 행동으로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쿠알라룸푸르 행사를 주최했던 ‘퓨처 사운드 아시아’의 완 알만 국장은 힐리의 행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멤버들의 키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1975 멤버들이 다른 세계적인 음악가처럼 공연이 이뤄지는 나라의 지침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놀랐다”며 “규칙을 어기는 것이 공연에서 꼭 필요한 게 아니고, (규칙을 어기면 이후)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는 점을 멤버들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힐리가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의 행동이 야기한 어떤 결과에도 직면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공연이 취소되면서 손해 보는 사람들은 팬들과 공연주최자”라고 주장했다. 또 “(단순히 내지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산업 전반에 걸쳐 생각한다”고 안타까워했다.

◆ 더 1975, 한국에서도 태극기 밟아 비판받아 

나중에 팬들을 다시 만나겠다던 더 1975는 예정됐던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정마저 취소했다. 이 밴드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성명에서 “불행하게도 현재 여건상 예정된 공연을 계속 진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공연 취소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인도네시아 정부 혹은 자카르타 공연 주최 측은 이와 관련, 이날 현재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자카르타 포스트는 더 1975의 공연 취소 결정에 팬들 사이에서는 환영과 실망감이 교차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팬들은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 사태에 안타까워했지만, 또 다른 이들은 쿠알라룸푸르 공연에서 발생했던 것과 유사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게 돼 오히려 다행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법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주를 제외하고는 동성애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사실상 동성애를 금기시하고 있다. 

더 1975는 25일 예정됐던 대만 공연도 취소했다. 대만은 무슬림 국가도 아니고, 오히려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허용한 나라다. 

힐리의 동성 키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공연 도중 남성 팬과 키스를 했다가 비난받았다. UAE 정부도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같은 해 9월 한국 공연 당시엔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인 태극기를 밟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팬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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