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연 영화] 산업형 농업은 어떻게 땅을 황폐화시키나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2023. 7. 2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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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 입맞춤을]

미국사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내용 중에 '더스트 볼Dust Bowl'이 있다. 우리말로는 '황진지대黃塵地帶'라고 번역한다. 1930년대 초에 가뭄과 황진, 즉 누런 흙먼지로 황폐해진 미국 중남부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 중부 대평원의 일부분으로 콜로라도 남동부, 캔자스 남서부,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의 지역들로 이뤄져 있다.

1900년대 초반, 미국의 농민들은 값싼 땅을 찾아 남부의 평원으로 몰려들었다. 이 지역은 강한 바람과 뜨거운 여름, 빈번한 가뭄 등으로 농사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밀 가격이 폭등하면서 농민들의 이주를 부추겼다.

농민들은 수억 평의 초지를 밀밭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 가뭄과 대공황이 밀어닥치면서 밀 시장이 붕괴했다. 건조한 겉흙에 간신히 뿌리를 내린 풀들은 평원을 지나는 강풍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중서부를 휩쓸었고, 이로 인해 2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1935년 4월 14일 일요일에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모래폭풍이 일어났고, 미국인들은 그날을 '검은 일요일Black Sunday'이라 부른다. 이 폭풍으로 이 지역에서 3억 톤이 넘는 표토表土가 소실됐다. 표토란 지표면에서 약 5~20cm 깊이 구간의 토양으로, 유기물질과 미생물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미국 '더스트 볼'이 망가진 이유

토양과 자연농법, 기후균형 등을 다루는 미국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감독 조슈아 티컬·레베카 해럴 티컬, 2020)은 황진지대 모래폭풍의 원인을 '경운耕耘'에서 찾고 있다. 경운이란 작물을 재배하기 전에 토양을 휘저어 섞어 부드럽게 하고 흙덩이를 작게 부수며 지표면을 평평하게 하는 작업을 말한다. 한마디로 논이나 밭을 갈아 김을 매는 것으로, 경운에 의해 표토가 이동된다.

영화는 미국 어느 지역을 가나 토양의 침식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침식이란 토양이 흙먼지가 되는 것인데, 급속한 토양의 침식은 오래전 쟁기의 발명과 함께 시작됐다는 것이다. "쟁기는 파종을 위해 토양을 부수는 기구"라는 얘기다.

황진지대의 재해는 한때 비옥했던 중서부 평원을 경운해서 토양을 노출시킨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영화는 주장한다. 1934년 말까지 약 80만㎦의 경지가 영구적으로 손상됐고,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상황을 직접 목격한 뒤 '토양 보호청'을 신설했다. 미국 농무부USDA 소속 '자연자원 보호청NRCS'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NRCS에서 31년간 근무한 보존농업학자 '레이 아출레타'는 탄소가 지구를 순환시키는 중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탄소를 품은 건강한 땅'에 주목한다. 엽록소를 가진 식물의 잎은 낮에 빛에너지를 이용해 뿌리로 빨아올린 물과 기공으로 흡수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광합성해 탄수화물과 산소를 생산한다.

그 과정에서 미생물은 탄소를 사용해 '글로말린glomalin'이라는 일종의 탄소 접착제를 만든다. 이 탄소 접착제가 땅속에 공간을 만들어 물과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대지로부터 포집한 탄소를 토양으로 끌어들여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땅은 갈면 갈수록 화학비료에 의존

경운을 통해서 토양이 약해질수록 농부들은 더욱 화학비료에 의존하게 된다. 화학비료는 토양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려 미생물들이 살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 몸은 급성 스트레스는 견뎌도 만성 스트레스는 견디지 못해요. 토양 생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밭에 계속 제초제와 비료를 뿌리며 경운을 거듭하는 행위는 만성 스트레스로 작용해 토양은 제 기능을 잃게 됩니다."

레이 아출레타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이산화탄소의 발생량 변화 그래프를 인용한다. 화면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이산화탄소의 양은 경운을 하는 4~5월엔 전 지구적으로 급증한다. 그러나 식물이 소생하는 6월이 되면 색깔이 극적으로 변한다. 이산화탄소의 양이 급감하는 것이다.

"건강한 행성은 식물로 뒤덮인 행성이다. 살아 있는 식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탄소를 원래 있던 곳인 토양 속에 되돌려 놓으면 많은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우디 해럴슨이 내레이터를 맡은 <대지에 입맞춤을>엔 많은 과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이 등장한다. 톱 모델 출신으로 유엔 친선대사인 지젤 번천과 NFL 쿼터백 톰 브래들리 부부 같은 유명 연예인들도 인터뷰에 응했다.

토양과 식물, 기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살아 있는 식물이 없으면 수분의 증발이 늘어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증산蒸散 작용'이다. 잎에 있는 기공을 통해 물이 수증기가 되어 빠져나가는 작용으로, 이를 통해 습도가 올라간다. 습도가 올라가면 강수량이 늘어난다.

지구 강우의 60%는 바다에서 온다. 이를 '물의 대순환'이라 한다. 40%의 비는 내륙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를 '물의 소순환'이라 부른다. 그런데 지구의 나지裸地에서 너무 많은 열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뜨거운 공기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이는 비를 끌어들이는 대신 비구름을 밀어내는 작용을 한다.

1㎡의 땅을 나지로 만들면 새벽에는 훨씬 춥고 낮에는 훨씬 더워진다. 똑같은 면적의 땅이 부엽토腐葉土(풀이나 낙엽 따위가 썩어서 된 흙)로 덮여 있을 때 최저 13℃, 낮 최고 29℃인데 비해, 나지일 때는 최저 –1℃, 낮 최고 43℃까지 오른다.

1970년대 이래 화학농법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면서 지구 표토의 3분의 1이 유실됐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표토 또한 60년 내에 사라질 거라고 한다.

산업형 농업은 토양의 사막화 초래

이러한 산업형 농업은 토양의 사막화를 초래한다. 전 세계 땅 3분의 2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토양이 흙먼지로 변함에 따라 매년 4,000만 명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고 있다. 2050년까지 10억 명의 인구가 토양 사막화의 난민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느 학자는 "세계 각지에 존재했던 20개 이상의 문명이 농업의 환경 파괴로 멸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토양과 기후 문제를 전 지구적으로 해결하려면 정치가 필요하다. 2015년 유엔은 프랑스 파리에서 기후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름하여 'COP21',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대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모였다. 여기에서 프랑스 농무장관 스테판 르폴은 실질적인 제안을 했다. '4/1000 계획'으로, 전 세계 토양의 탄소 함량을 매년 0.4%씩 증가시키자는 내용이다. 그러면 인류가 매년 배출하는 같은 양의 탄소를 토양에 '격리'하게 되는 셈이다.

"탄소를 격리하면서 농사 짓기 위해서는 독성 살충제의 사용을 현저하게 줄이고 농사짓는 법을 바꿔야 한다"는 '4/1000 계획'에 30개국이 찬성 사인을 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동시에 농산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3개국인 중국·미국·인도가 합의에 참여하지 않아 빛이 바래고 말았다.

<대지에 입맞춤을>은 탄소 배출 감소와 지구 기후 안정화를 위해 '재생regeneration 농업'을 제시한다. 재생농업은 경운하지 않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적인 농업방식이다. 영화는 '무無경운 농법'을 사용하는 샌디에이고의 어느 농장 사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 재생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토양은 대기 중 탄소도 더 많이 흡수하는데, 유기물이 1% 증가할 때마다 토양은 4,000㎡당 10톤의 탄소를 더 흡수한다고 한다.

촬영팀은 사막화와 재생의 차이를 보기 위해 짐바브웨로 향하고, 친환경 화장실의 실제 사례를 살피러 아이티 현장을 방문한다.

마치 잘 짜인 보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 간혹 있긴 하나 토양과 탄소, 기후 변화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다큐멘터리이다. 감성보다 이성에 호소한다는 점 또한 높이 살 만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레이터 우디 해럴슨은 "우리의 임무는 단순합니다. 지구 자체의 재생력을 활용해야 해요. 우리 약속합시다. 저도 포기 않을 테니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포기하기 이를뿐더러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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