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돋보기]연금자산 수익률 높이려면

송길호 2023. 7. 2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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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너무 오래 살아서 돈이 모자라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장수위험(longevity risk)이라고 한다. 장수위험 관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가 되면서 글로벌 연금시장은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손쉽게는 종신연금을 강제 도입해 장수위험을 완전히 헷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투박한 접근은 전통적인 DB형 연금의 쇠퇴에서 알 수 있듯이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충돌하며 시들해졌다. 대신 2015년 영국의 연금자유화 개혁처럼 최종 선택을 개인에게 맡기는 자유주의적 개입이 큰 흐름이 됐다. 개인이 제한된 합리성과 불합리한 자신의 행태를 각성하도록 작은 개입을 통해 큰 행동 변화를 만들어내는 넛지(nudge)가 중요해 진 것이다.

장수위험과 관련된 최근의 흥미로운 넛지는 미국 퇴직연금 개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근로자 자신의 평생소득(lifetime income)이 얼마인지 항상 인지하도록 퇴직연금사업자에게 공지 의무를 부과한 정책이다. 가입자에게 수익률 정보를 제공하듯이 퇴직연금사업자는 근로자별 연금자산 잔액을 정부가 정한 계산 방식에 따라 월 연금수령액으로 환산해 알려주도록 한 것이다. 은퇴 후 소득이 얼마나 부족한지 각성토록 해 더 많은 연금자산을 모으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장수위험 관리는 노후에 자신이 필요한 소득(자산)이 얼마인지 스스로 자각하는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파고든 넛지 정책이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목적의 연금포털사이트가 있다. 운영 주체는 감독당국이고, 근로자가 연금포털에 가입하면 알 수 있다. 차이점은 근로자가 해당 사이트의 존재를 알기 어렵고 해당 사이트를 직접 찾아 가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취지는 좋으나 정보 비대칭과 번거로움으로 호응을 얻는데 한계 있다. 근로자에게 찾아가는 미국 방식이 더 큰 행동 변화를 이끄는 작은 넛지가 아닐까.

며칠 전 본격 시행한 디폴트옵션제도에도 큰 변화를 위한 작은 넛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디폴트옵션은 비록 절차가 복잡하고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하는 등 핸디캡이 있지만, 퇴직연금제도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결정적인 제도이다. 미국이 최근 시간제 근로자로 연금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고용주에게도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허용하는 등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자신감의 배경에는 401(k) 수익률과 소득대체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디폴트옵션 등 운용개혁의 선행된 성공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형 디폴트옵션에 필요한 넛지는 무엇일까. 자신의 저축갭이나 금리수준과 무관하게 원리금보장상품을 관성적으로 선택하는 행태 편의에 큰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된 수익률 비교 공시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자에게 직접 찾아가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앞서 월연금수령액 고지처럼 연금사업자가 근로자가 선택한 디폴트옵션상품의 수익률 비교 성과를 모바일 등을 통해 제공하는 방법이다.

비교공시의 중요성은 얼마전 발표한 디폴트옵션 수익률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상반기 디폴트옵션의 6개월 단순 평균 수익률이 5.8%라고 한다. 고금리 등으로 과거보다 갑절 높은 6개월 수익률을 실현하는 등 성과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디폴트옵션의 88%가 원리금보장상품을 선택해 제도 도입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도입 이전 원리금보장상품비율(DC+IRP 75%)보다 높아졌다. 일시적인 고금리 영향일 수 있으나 장기적 시계의 디폴트옵션 취지로 볼 때 변화의 촉매가 될 비교공시 넛지는 더욱 중요해졌다. 근로자가 실제 느낄 디폴트옵션 수익률은 단순수익률이 아닌 순자산 가중 수익률 2.6% 일 것이다. 원금보장상품을 선택한 근로자라면 가중평균 수익률 2.2%, 실적배당상품 선택 근로자라면 5.84%일 것이다. 이런 차이를 항상 확인할 수 있게 해야 자신의 위치, 변화 필요성을 각성하게 될 것이다. 월연금수령액 고지와 수익률 비교공시 제도 도입을 통해 디폴트옵션이 연금자산 운용에 커다란 변화를 이끄는 게임체인저가 되기를 바란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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