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생각 없는 국민의 ‘가붕개 공화국’

강경희 논설위원 2023. 7. 2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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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보 해체 등 정부 부처 앞장세워 ‘답정너’ 정책에 부역할
엉터리 전문가 모으고 평가와 지표 조작… 그들은 어떤 나라를 꿈꿨는가
2017년 8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산업부ㆍ환경부ㆍ국토부 핵심정책 토의'에 입장하고 있다. 문 대통령 왼쪽이 김은경 환경부 장관, 오른쪽 뒤가 백운규 산업통상부 장관./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 정책의 일환으로 대북(對北) 전력 지원을 약속한 시절 산업자원부를 출입했다. 이 대북 전력 지원의 주무 부처가 산업부였다. 성사 가능성을 담당 공무원들한테 물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북한도 강하게 요청하고 우리 정부도 주겠다지만 쉽게 성사될 사안이 아니다. 대북 송전 시설을 설치하려면 북한 전역의 전력 사정부터 면밀히 조사해야 하는데 북한이 허용할 수도 없고, 다급해서 우리 측 제안을 수용한다면 우리한테는 도움 된다. 매사 깜깜이인 북한 사정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면 대북 정보를 축적하는 호기가 될 것이다.” 후임 노무현 정부도 예산 반영을 추진하는 등 대북 전력 지원은 좌파 정부가 마음만 앞선 채로 꽤 오랫동안 끌었지만 전문성과 소신을 가진 산업부 공무원들 판단이 맞았다.

그런 산업부를 기억하는 전 출입 기자의 눈에, 문재인 정부 시절 산업부는 수십 년 쌓아올린 공무원 기강과 역량도 고작 5년짜리 정권이 얼마나 심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계기가 됐다. 전신(前身) 상공부는 1948년 7월 17일 정부 수립 때 설치된 핵심 중앙 부처다. 60~70년대에 수출 주도 성장과 중화학 공업 육성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을 진두지휘한 주역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산업부 출신이듯 엘리트 경제 관료의 산실이었다. 국가 주도 성장에서 벗어나 민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산업부 위상도 기울었지만 몸담고 있던 관료들의 전문성과 자부심, 나라 경제에 대한 열정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문 정부 초기에도 그런 DNA가 다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 정부 출범 후 탈원전 정책에 산업부는 2030년까지 매년 전기료를 2.6%씩 인상해야 한다고 두 차례 ‘바른말’을 했다.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는 문 대통령 채근에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이 조기 폐쇄를 지시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영구 정지 허가가 나올 때까지 ‘한시적 가동’의 필요성을 소신 있게 보고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판단을 장관이 “너 죽을래”라고 윽박지르며 묵살하고 ‘즉시 가동 중단’을 강행했다. 이런 대통령과 장관 밑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은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도록 압박해 원전 생태계를 망가뜨리는데 발 벗고 나섰고 조기 폐쇄의 위법 행위를 덮느라 휴일 밤중에 사무실에서 관련 자료 수백 건을 삭제하는 범법 행위까지 저질렀다. 탈원전 대신 태양광을 마구잡이로 확대하는 정책에 동원되면서 업자 로비 들어주고 그 대가로 돈벌이에 연루된 산업부 공무원까지 생겨났다. 이토록 나락으로 떨어진 산업부를 본 적이 없다.

지난주 감사원 감사에서 산업부의 탈원전 강행과 판박이 같은 환경부의 황당한 ‘보 해체’ 결정 과정이 드러났다. “우리가 보 설치 이전의 수치를 쓰는 것이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국민들이 딱 들었을 때 ‘그게 말이 되네’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 ‘생각 없는 국민’의 눈만 가리면 된다는 4대강 민관 합동 기획·전문위원회의 경악스러운 회의록 발언에, 새삼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목표가 궁금해졌다. 문 전 대통령은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국가 대개조, 적폐 청산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국정 포부를 밝혔었다. 도대체 어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꿨던 걸까.

막스 베버는 근대 국가의 합리적 작동에 필수 조직으로 전문화된 관료제를 꼽았다. 대한민국 성공사에서도 국가 발전을 위해 몸 던져 소신껏 일해온 엘리트 관료들과 전문가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문 정부의 국정 운영에는 전문화된 관료도, 객관적 판단으로 균형을 잡아줄 전문가도 설 자리가 없었다.

탈원전, 보 해체 등 답을 정해 놓은 정책에 입맛 맞는 얘기 해줄 엉터리 전문가와 공무원들 모아 놓고 거수기 역할만 맡긴 조폭식 국정 운영이었다. 재정 파수꾼 기획재정부를 무력화시키고 미래 세대 자산을 훔치는 나랏빚 급증도 개의치 않으면서 “곳간에 곡식 쌓아두면 썩는다”는 황당 논리로 빚내서 돈 풀었다. 통계 분칠에 통계 지표 바꾸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제 자식들은 외고 진학시키고 유학 보내고 서류 조작해 명문 학벌 만들어주면서 “하늘 쳐다보지 말고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개천 만들자”는 ‘가붕개론’ 장관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뒤늦게 드러난 ‘생각 없는 국민’ 발언까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생각 없는 국민들이 사는 가붕개 공화국’으로의 국가 대개조, 5년 만에 멈춰 세운 생각 있는 국민들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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