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다시 쇼팽 콩쿠르 나가는 악몽 꿔… 100번 연주하면 3번 만족”

김윤덕 선임기자 2023. 7. 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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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삼성 호암상 최연소 수상 조성진
2023년 7월 11일 서울 강남의 복합문화공간 ODE PORT(오드포트)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곧고 긴 다섯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겨우 11세때 "영원한 1등도, 꼴찌도 없다"고 말했던 그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차고 까다롭다는 세평은 거짓이었다. 스물아홉 살 조성진은 허당에 가까울 만큼 잘 웃고, 털털하며, 겸손한 청년이었다. ‘젊은 거장’ 소릴 듣지만 주기적으로 세 가지 악몽을 꾼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쇼팽 콩쿠르에 다시 나가는 꿈”이라고 해서 폭소가 터졌다. “나는 운이 좋았을 뿐 뛰어난 연주자는 아니다”라고도 했다. 왜 그리 겸손하냐 묻자 “저는 그냥 팩트를 말한 것”이라고 했다. 장대비 퍼붓는 내내 우문현답이 쏟아졌다.

◇세 가지 악몽

-얼굴이 도로 앳되졌다.

“한국 와 살이 올라가지고. 머리를 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조성진은 지난 12일까지 국내 4개 도시에서 헨델, 브람스의 곡들로 독주회를 연 뒤 베를린으로 돌아갔다.

-올해 삼성 호암상 예술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더라.

“정명훈, 백건우 선생님이 받으신 상을 저도 받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홍라희 여사가 열성 팬이라던데.

“제가 유명하지 않을 때부터 연주회에 와주셨다. 2012년 파리로 유학 가기 한 달 전, 스승인 신수정 선생님 댁에서 처음 뵀는데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었다.”

-수상 소감에서 1년에 100회 연주를 하는데도 매번 긴장된다고 했더라.

“실수할까 봐, 내가 원하는 표현이 안 될까 봐.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엄청 긴장된다(웃음).”

-막상 무대 위 조성진은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일단 연주를 시작하면 무의식으로 들어가려 한다. 연주는 생각이 많으면 잘 안 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하나.

“하루 5시간 이상 안 한다. 경험상 오래 연습하면 손이 아파서 짧은 시간 집중해서 한다.”

-나무보다는 숲이 보이는 연주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디테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 너무 치중하면 음악 전체를 표현할 수 없다. 음악이 30분짜리면 어디에 클라이맥스를 두고 연주해야 할까 늘 생각한다. 구조, 혹은 기승전결이 명확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어느 부분이 아름답게 느껴져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는다. 다음에 더 아름다운 대목이 나올 수 있으니까 참는 거다.”

-조성진도 피아노가 뜻대로 안 쳐지는 악몽을 꾸는지.

“늘 세 가지 악몽을 꾼다. 어떤 협주곡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연주회날 프로그램북에 다른 협주곡이 적혀 있는 꿈, 무대가 미끄러워 연주하다 의자에서 떨어지는 꿈, 쇼팽 콩쿠르에 다시 나가는 꿈(웃음).”

조성진은 2015년 10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다시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도 돼 기쁘다”고 말했다.

-징크스 같은 것도 있나?

“손에 땀이 많은 편이라 연주하기 전 손을 비누로 박박 씻는다(웃음).”

2023년 7월 11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ODE PORT(오드포트)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는 심플하고도 심드렁한 '이과적 답변'으로 좌중을 웃게 했다. /김지호 기자

◇바로크 음악에 빠지다

-6번째 정규 앨범 ‘헨델 프로젝트’가 발매 직후 빌보드 클래식 주간차트 1위에 올랐다. 태어나 가장 많이 연습한 곡이라고 했더라.

“좀 어렵기도 했고, 코로나로 연주가 줄줄이 캔슬돼 집(베를린)에서 연습할 시간이 많기도 했다. 제가 레퍼토리 욕심이 꽤 많아서 베토벤 모차르트부터, 라벨 드뷔시 같은 프랑스 음악,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같은 러시아 음악은 많이 연주했는데 바흐나 헨델, 라모 같은 바로크 작곡가들은 안 해봐서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다.”

-바로크 중에서도 왜 헨델인가.

“바흐보다 멜로딕하고 가슴을 울려서.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더라. 음악이 언어와 같아서, 바로크 음악을 여섯·일곱 살 때부터 했으면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습득했을 텐데 저는 고전, 낭만파 위주로 해서 그런지 잘 안 되더라. 그래서 최대한 바로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봤다.”

-코로나의 불안감을 헨델 음악이 위로해줬을까?

“코로나 때 불안했던 건, 제가 1년에 100번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0번이 되니까 왠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헨델을 의도적으로 택한 건 아니다. 음악 들을 시간이 많아져 집에 있는 몇천 장의 음반을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들어보다가 리히테르가 연주한 헨델 음반을 발견했다. 들어보니 너무 좋았다.”

-하프시코드를 피아노로 대체해 조성진 식으로 해석한 이번 앨범을 헨델이 들으면 칭찬해줄까?

“일단 피아노 소리에 놀라실 것 같다. 지금의 피아노와 그때의 피아노(하프시코드)가 너무 다르니까(웃음). 칭찬보다는 ‘내 곡을 이렇게도 연주할 수 있구나’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시면 제일 좋을 것 같다.”

-빌헬름 켐프가 편곡한 헨델의 미뉴엣 G단조를 들은 애호가들이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느낌’, ‘숨이 멎을 듯 아름답다’는 댓글을 올렸더라.

“댓글은 안 봐서…. 그런데 음악은 연주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청중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지난 3월 프라하에서 현대음악 작곡가인 티에리 에스케슈의 피아노 협주곡 ‘에튀드 교향곡’을 세계 초연했다.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연주할 땐 질문이 생겨도 물어볼 수가 없는데, 현대음악은 작곡가한테 바로 물어볼 수 있으니까(웃음).”

-현대음악은 너무 난해하지 않나.

“그 음악이 고전이 될지 여부는 50년, 100년 뒤에 결정된다. 라흐마니노프나 프로코피예프 음악도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주해 왔기 때문에 고전이 됐다고 생각한다. 싫어하는 청중도 이해하지만 저는 거부감이 전혀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도전해보려고 한다.”

-자신의 연주에 얼마나 만족하나?

“연말이면 마음에 들었던 연주를 혼자 꼽아보는데, 100번 중 3번 정도 나온다.”

-작년 기준으로 3번의 연주라면?

“5월 독일 뷔어츠부르크에서 밤베르크 심포니와 연주한 모차르트 협주곡 23번, 8월 에든버러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베토벤 협주곡 5번, 10월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대구 공연.”

-작년 2월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빈 필 협연은 드라마틱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주자가 갑자기 바뀌어 공연 24시간 전에 의뢰받고 베를린에서 뉴욕으로 날아갔더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이라 수락했다. 3번이었으면 못 했을 거다(웃음).”

-3년 만에 친 곡이고 리허설도 제대로 못 한 채 무대에 섰는데 뉴욕타임스가 ‘기적 같은 솜씨’라고 호평했다.

“솔직히 만족스러운 연주는 아니었다. 뉴욕행 비행기에서 잠깐 졸았을 때 꿈속에서도 연습했을 만큼 압박감이 엄청났는데 지휘자 야니크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포옹할 때 울컥하더라.”

-호텔로 돌아왔을 때 코피가 터졌다고.

“쌍코피였다(웃음).”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헨델 프로젝트' 앨범. (유니버설뮤직 제공)

◇베토벤과 브람스에 약하다?

-한국 클래식 역사는 조성진 전과 후로 나뉜다에 동의하는지?

“전혀 아니다.”

-’건반의 시인’ ‘건반 위의 구도자’로도 불린다.

“베를린 필과 협연 때 사이먼 래틀 경이 그렇게 표현하셔서…. 근데 ‘아, 시인처럼 쳐야지’ 이러면서 치진 않는다(웃음).”

-’조성진은 늘 가슴 한편에 자기만의 시를 품고 연주한다’는 평도 있다.

“음…. 제가 칭찬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차라리 지적을 해주시면 좋겠다.”

-조성진은 쇼팽·드뷔시·라흐마니노프엔 강하지만, 베토벤·브람스처럼 웅장한 힘이 필요한 독일 작곡가엔 약하다더라.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게 잘 치는 것 같진 않다(웃음). 베토벤 콘체르토는 자신 있는데 소나타는 아직 자신이 없다. 브람스는 협주곡 두 개랑 클라비어슈트케, 변주곡을 해봤는데 개인적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요하는 곡보다는 형식과 구조의 미학을 가진 곡을 선호한다. 뭔가 볼륨이 큰 음악에 강점이 있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건 맞다.”

-임윤찬, 박재홍 등 최근 약진하고 있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조언한다면.

“저도 시행착오 겪으며 배우는 중이라 조언할 입장이 못 된다. 그리고 조언이 필요없는 후배들이다.”

-스승들은 ‘조급해하지 마라, 기다려라’고 조언했다던데.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고(웃음).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아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요즘 가장 핫한 임윤찬은 어떻게 평가하나.

“경이롭더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반 클라이번 콩쿠르 때 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진짜 대단했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 친다.”

-조성진과 임윤찬 연주를 비교해 올려놓은 영상들이 많던데 기분 나쁘지 않나?

“상관없다. 카라얀과 번스타인도 비교하는데 제가 뭐라고(웃음).”

-그러나 조성진·임윤찬 같은 연주자들은 극소수다. 졸업 후 ‘예술 낭인’으로 살아가는 전공자들이 많다.

“제가 동료들에 비해 좀 더 잘나가는 건 맞지만 성공했다곤 할 수 없다. 운이 필요한 일인데 그게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전 항상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기회가 있을 때 잡을 준비. 그런데 전 유명해지려고 음악을 한 건 아니다. 제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다르게 풀렸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독한 음치

-얼마 전 TV 예능 프로에 나와 시청자를 웃겼다.

“클라리넷 하는 제 친구 김한은 재미없었다고 하던데(웃음).”

-정말 곱창류를 좋아하나?

“다 잘 먹는다. 맛있는 거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

-엄마가 요리를 잘하시나?

“아빠가 잘하신다. 된장찌개부터 파스타까지.”

-첼리스트 장한나는 연주를 5초만 들어도 그 사람 실력을 알아본더라. 성진씨도 그런가.

“5초는 아니고… 2분?”

-장한나처럼 지휘 공부도 했다던데.

“2019년 통영음악제에서 지휘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목소리도 작고, 카리스마 있게 남한테 뭘 시키는 걸 잘 못하더라. 연주자들 눈치도 보게 되고. 데뷔하자마자 은퇴했다(웃음).”

-카네기홀이든, 200석 공연장이든 똑같은 자세로 연주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날 제 연주를 처음 듣는 분도 있고, 마지막으로 듣는 분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젠 유명 홀, 유명 오케스트라보다 어떤 사람들과 공연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지난달 경주에서 우리 현악기 연주자들이 결성한 ‘발트 앙상블’과 협연하면서 정말 재미있고 행복했다. 마음에 맞는 연주자들과 음악을 만들어가는 기쁨을 만끽했다.”

-사람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연습하고 악보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범생이더라. 실연도 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연주가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슈베르트가 서른한 살에 죽었는데 연애를 거의 한 번도 못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곡을 쓴 분이.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내 인생엔 스토리가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안 좋은 경험은 안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웃음). 60쯤 되면 내 음악도 드라마틱해지지 않을까.”

-한 달 휴가가 주어지면 남극 여행을 하겠다는 꿈은 여전한지?

“요즘 빙하가 녹고 있어 가지고(웃음). 또 한 달간 피아노를 안 치면 손이 굳어서 연주가 불가능해지는 문제도 있다.”

-김광석을 좋아하던데, ‘서른 즈음에’도 부를 줄 아시나?

“노래를 끔찍하게 못 한다. 거의 음치 수준이다.”

-명연주자도 음치일 수 있나?

“몇 분 뵀다(웃음).”

-조성진의 ‘이과적 답변’이 사람들을 웃게 한다.

“아버지가 공대 나오셨고 작은아버지도 공대다. 아버지는 피아노 연습 그만하고 나가 놀자고 하던 분이다.”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옮겨 6년째 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베를린 필하모니홀. 관객으로, 애호가로 연주 들으러 갈 때 가장 행복하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장례식에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를 연주해달라고 했다더라. 조성진이라면?

“음…. 지금은 좀 이르지 않을까?(웃음)”

-그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조성진은 오늘 어떤 곡을 연주할까?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피아노를 치는 건 좀…. 그냥 가족과 맛있는 밥을 먹겠다(웃음).”

<YONHAP PHOTO-2729> 피아니스트 조성진, 발트 앙상블과 협연 (서울=연합뉴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5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발트 앙상블과 협연을 펼치고 있다. 발트 앙상블은 유럽 각지의 주요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젊은 한국인 연주자들이 모여 구성한 현악단이다. 2023.6.25 [성남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3-06-25 21:25:45/<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조성진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나 예원학교, 서울예고,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했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를 거쳐,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우승했다. 베를린 필, 빈 필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쇼팽에서 모차르트, 드뷔시, 슈베르트, 헨델에 이르기까지 다수 앨범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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