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유학생 단체 등 활용… 사드·후쿠시마 여론몰이
국내 한 조선족 단체는 지난 4월부터 2차례에 걸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왜 저지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현장에선 “후쿠시마 주변에서 동식물 이상 징후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일본 현지의 토건 세력이 후쿠시마 주민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핵무기 사용이 가능한 플루토늄 40톤을 숨기려 원전 폭발 당시 해외 지원을 거부한 일본은 믿을 수 없는 나라다” 등 검증되지 않은 여러 얘기가 나왔다. 이 단체 대표는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시찰단 파견에 대해 “일본 정부에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굴종 행위라고 한국 정치권과 시민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방첩 당국은 이 단체의 활동이 ‘오염수 괴담 확산을 위한 중국의 심리 공작’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당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등 국내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해 중국이 30곳 넘는 한국 내 유학생·조선족 단체를 활용해 여론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를 다수 감지했다. 조선족 출신의 한 지방 의회 의원도 오염수 반대 여론 확산, ‘영주권자 투표권 제한’ 반대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23일 “중국의 공작은 외교·친선 활동이라는 외피를 하고 있지만, 진짜 의도는 한미 동맹을 균열시키고 국론 분열을 부추기려는 것”이라고 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일이 전례 없이 밀착하면서 중국으로선 한국을 상대로 한 영향력 공작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중국 관영 언론들도 편파·과장 기사를 양산하며 이런 영향력 공작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한·미·일 안보 협력에 반대하고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일부 친야(親野) 성향 시민 단체의 시위를 과장해 보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3월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부 시민 단체가 정부의 ‘제3자 변제’를 통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방침에 항의하자 관영 매체들이 ‘한일 정상의 외교 쇼, 여론 반발로 찬물’ 같은 자극적 제목을 달아 중점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이런 여론이 마치 한국의 전반적 분위기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소식통은 “한국 미디어 매체들에 대한 투자, 지자체와 협력하는 사업을 통해 영향력 공작 규모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앞서 2016년 7월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당시에는 재한 화교·유학생·언론인 등 100여 명이 모여 “양국 간 우정을 파괴할 것” “한국을 화약고로 만드는 행위”란 반대 성명을 냈다. 여기에는 지난해 서울 송파구의 한 중식당을 ‘비밀 경찰서(국외 불법 경찰 조직)’로 운영한 혐의를 받아 논란이 됐던 왕모씨도 이름을 올렸다. 이 시기를 전후해 국내의 중국 유학생 다수가 언론에 나와 “사드 배치는 미국의 중국 봉쇄” “한국에도 위협이고 미국만 이득이 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여론전 뒤에는 중국 당국 차원의 공작 활동 지원이 있는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파악했다. 미국과 벌이는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건 중국은 친미 성향 국가들에 대한 심리전·공작을 확대하고 있는데, 특히 친미 동맹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던 한국이 집중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영향력 공작은 2030세대 내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국내 상황과 맞물려 진화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친중(親中) 인플루언서 집단을 갖추고, 팔로어가 수만~수십만 명에 이르는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중국 문화를 홍보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국 이미지 개선을 위한 통상적 홍보를 넘어 동북아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규정하는 동북공정류의 왜곡 등도 나타나고 있어 정보 당국이 주시 중이다. 중국은 미래 세대의 친중화를 노려 한중 간 영화 공동 제작을 추진 중이고, 팬데믹 이후에는 여러 지방정부가 직접 나서서 우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초청 프로그램 개설을 고려하고 있다.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 원군으로 참여한 등자룡(鄧子龍) 장군과 이순신 장군을 공동으로 추모하는 사업을 모색하는 등 역사를 활용한 영향력 공작도 한창이다.
주한 중국 대사관은 재외공관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2020년부터 ‘한중 최고위 과정’을 운영하며 국내 여론 주도층에게 자국 입장을 전달하고, 대중(對中) 우호 여론을 조성하는 창구로 삼고 있다. 국내 주요 대학에 설치돼 있는 중국 교육부 산하 ‘공자학원’도 영향력 공작의 첨병으로 꼽힌다. 미국·영국 등 상당수 서방국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공자학원 퇴출에 나섰다. 겉으로는 어학 등 중국 관련 교육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현지에서 파견된 교직원이 첩보 수집, 중국인 학자·유학생 감시 등 사실상 간첩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24곳이 있어 ‘무풍 지대’다. 상당수 대학이 공자학원 운영 예산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그만큼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구조다. 대학생들에게 월 30만~160만원가량 지급하고, 중국어 대회 입상자에게 중국 취업을 미끼로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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