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교권 대 학생 인권’ 유감
지난 18일 서이초등학교의 젊은 교사가 유명을 달리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직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우리 사회가 진상을 밝혀내고 궁극적인 해법도 도출해내는 성숙한 사회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전망이 밝지는 않다. 소위 교권과 학생 인권을 대립 구도로 보는 인식의 오류가 이 과정을 심각하게 왜곡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와 언론은 이번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면 으레 교권침해와 학생인권조례를 단골처럼 언급하면서 대립 구도를 부추긴다.
양천초등학교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에 이어 서이초등학교 사건이 발생하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2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우선시되면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지적하며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권침해라는 제목을 달고, 교권침해가 학생인권을 강조한 결과라고 단정 짓는 기사나 온라인상의 글들이 넘쳐 난다.
그런데 우리는 적절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교권은 교육기본법이나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교육 즉 교육과정, 교재, 교육 내용 등을 결정할 권리와 성적 평가와 학생 지도 징계권 등으로 구성된다.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개념이다. 반면 으레 교권침해 유형으로 언급되는 사례들은 의도적인 수업 방해, 교육 중인 선생님의 영상·사진·음성 무단 유포, 상해·폭행·협박·명예훼손·손괴, 성희롱 등 성폭력 범죄, 불법 정보 유통 행위 등이라고 한다. 의도적인 수업 방해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교권침해가 아니다. 교사라는 교육현장의 또 다른 주체를 향한 인권침해일 뿐이다.
‘교권침해’와 ‘교사의 인권침해’라는 시각의 차이는 문제의 인식과 그 해법의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인권침해의 시각으로 보면 교육 현장 모든 주체의 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지만, 학생 인권과 대립하는 교권침해로 보면 ‘교사 권위’를 강화하고 이주호 장관처럼 학생 인권을 축소하는 해법을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혹시 인권침해 사례를 두고 교권이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세력은 교사가 권위라는 이름으로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체벌과 폭력을 구별하자면서, 체벌은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한 방증이다. 언론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 교사 일동’ 이름으로 개최한 지난 22일의 보신각 앞 집회에서 나온 “교사에게 권위가 아닌 존중을, 교사에게 권력이 아닌 인권을 보장해 달라”는 발언의 취지를 되새겨야 한다.
백번 양보해 교권이란 표현을 받아들인다 해도, 교권침해와 학생인권조례를 연결시킬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 자료를 인용한 다수 기사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던 서울, 광주, 전북은 2016년에서 2019년 사이 교권침해 사례가 줄었다 한다. 경기는 늘었지만 진보 교육감이던 부산은 오히려 줄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대구, 인천은 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교권을 악화시켰다는 근거는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교사 인권침해 사례를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계기로 삼아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주호 장관은 곽노현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했다는 과거를 앞세우고,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진보 교육감의 왜곡된 인권의식으로 학교 현장에서 교권이 붕괴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교사의 인권침해는 교권이란 이름으로 학생의 인권이 무자비하게 짓밟히던 과거로 돌아감으로써 해결될 수 없다. 교육 현장에서 인권 교육을 강화하고, 모든 주체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인권 가치에 적합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정확한 개념을 사용해 이러한 해법의 현실화에 기여해야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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