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할리우드의 AI 임파서블

정유진 기자 2023. 7.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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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스파이 요원인 에단 헌트가 오토바이로 산등성이를 질주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상영관 안 관객들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개봉에 앞서 공개된 이 장면의 메이킹 필름을 보고 온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이제부터 펼쳐질 액션신은 진짜라는 것을.

정유진 국제부장

에단 헌트 역을 맡은 톰 크루즈는 무려 1264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린다. 까마득한 허공에서 오토바이와 함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그에게 주어진 생명줄은 달랑 낙하산 하나. 거센 바람과 중력을 정통으로 맞아 얼굴 가죽이 뒤틀리는 와중에 그는 드론 카메라를 향해 대사까지 친다.

그리하여 에단 헌트밖에 할 수 없는 저 무모한 스파이 작전은, 톰 크루즈이기에 할 수 있는 진짜 액션신으로 완성된다. 에단 헌트와 톰 크루즈가, 영화와 현실이 완벽히 겹쳐지는 짜릿한 쾌감. 마블 히어로가 구름을 뚫고 우주로 날아가는 최첨단 VFX(시각특수효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스릴감이다.

겨우 10초에 불과한 이 절벽 신을 위해 톰 크루즈는 영국의 한 채석장에 연습용 세트를 지어놓고 오토바이 점프 연습만 1만3000번을 했다고 한다. 스카이다이빙 연습은 500회 이상에 달하고, 실제 촬영 때는 깎아지른 노르웨이 절벽에서 하루 6번을 자유낙하했다.

도대체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배우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스턴트 대역을 쓴 후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로 감쪽같이 얼굴만 바꿔 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마블 히어로인 완다 역의 엘리자베스 올슨은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올슨은 지난 4월 한 토크쇼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촬영 당시 일화를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와이어를 달고 30피트(약 9m) 높이에서 떨어지는 장면이었어요. 감독은 제가 그 액션을 직접 하길 원했죠.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어요. 모든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에요. 스턴트 대역이 왜 있겠어요. 기술도 굉장히 발전했는데 대역을 쓴 후 얼굴만 교체하면 되잖아요. 항상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당시 이 말은 톰 크루즈와 비교되며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지만,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배우가 톰 크루즈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부상의 위험을 줄이고 액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딥페이크 기술이 필요한 장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실제 톰 크루즈는 이런 질문에 숱하게 시달렸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는 “자식도 있는 사람이 왜 목숨 걸고 스턴트를 직접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톰 크루즈는 그런 시선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이렇게 되물었다. “아무도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에게 왜 직접 춤을 추냐고 묻지는 않잖아요?”

우문에 현답이었다. 그러나 톰 크루즈의 그 반문은 최근 파업에 돌입한 할리우드의 공포를 의도치 않게 예견한 말이기도 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한 10년쯤 후에는 “왜 직접 춤을 추죠?”라고 묻는 시대가 정말로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왜 아니겠는가. 자본 회수 기간을 단축할 수만 있다면 대형 스튜디오는 배우에게 춤과 노래 연습 비용을 들이는 대신 AI 기술을 선택하고도 남을 것이다.

실제 배우조합 측은 넷플릭스, 디즈니, 워너 등 대형 스튜디오가 속한 영화·TV제작자연맹(AMPTP)이 “하루치 급료만 주고 단역배우의 이미지를 스캔한 후 그 이미지를 영원히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AMPTP는 “거짓말”이라고 펄쩍 뛰면서 “영원히가 아니라 해당 배우가 고용된 영화에서 사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어쨌든 연기는 AI가 할 테니 하루치 스캔 비용을 주고 이미지만 사들이겠다는 뜻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말이다.

현지 매체인 할리우드리포터는 파업 돌입 직전 톰 크루즈가 “A급 배우로서는 이례적으로” 교섭에 직접 참여해 AMPTP에 AI에 대한 배우조합의 우려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에서 에단 헌트가 싸우는 적이 스스로 진화하는 초고도 AI ‘엔티티’라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더욱 이목을 끌었다.

우리는 에단 헌트가 엔티티에 승리할 것임을 벌써 알고 있다(그래야 시리즈가 계속될 테니까). 그렇다면 AI와 할리우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다만 확실한 것은 이미 환갑인 톰 크루즈가 더 이상 뛸 수 없는 몸이 됐을 때, 얼굴만 갈아 끼운 딥페이크 에단 헌트가 하늘을 나는 모습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유진 국제부장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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