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아파도 통역 없어 치료 못해… 이주민 통번역 사업 예산 복구를”
부산시, 올해 들어 예산 절반 삭감… 질환 경중 따져 통역 대상 선별해야
이주민 대다수가 합법적인 노동자
농어촌-제조업 분야서 궂은일 맡아… 아플 때 차별 없이 치료받게 되길
이주민 통번역센터 링크(LINK)의 김나현 센터장(49)은 21일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이주민과함께 사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부산시가 지난해 예산보다 절반으로 삭감한 이주민 통번역 지원사업 예산을 원상 복구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1995년 베트남에서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정착한 김 센터장은 2012년부터 이주민이 병원에서 의료진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치료받을 수 있게 통역을 지원하는 링크에서 근무하고 있다. 링크는 이주민 인권 단체인 ㈔이주민과함께의 부설 기관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은 기본적인 한국어 소통은 가능하지만 의료 용어를 어렵게 느껴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전문 통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김 센터장은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도움을 받아 이주민 통번역 지원 시스템을 국내에서 처음 구축한 링크가 알려지면서 사업이 점차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이주민 의료통번역 서비스는 2012년 부산시로부터 500만 원을 지원받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산은 매년 증액돼 지난해 1억 원까지 늘었다. 그런데 올해는 절반으로 삭감된 5000만 원이 책정됐다고 한다. 이에 통역가에게 지급되는 활동비를 줄일 수밖에 없어 올해 부산의료원에서 제공되는 베트남과 필리핀, 러시아 등의 통역 지원 횟수가 지난해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센터장은 “통역 비용으로 한 달에 500만 원 넘게 지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려고 링크의 문을 두드렸을 이주민에게 얼마나 아픈지 경중을 물어 통역 지원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 예산 부족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부산의료원 측에서도 이주민이 통역가 없이 방문할 경우 “정확한 진단을 설명하려면 통역가가 필요하다”며 돌려보내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동네 병원에서 급성 충수돌기염(맹장염) 진단을 받은 환자가 부산의료원 등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하다가 통역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게 된 셈”이라며 “아플 때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시가 예산을 다시 증액하고 컨트롤타워 등을 설치해 더 확대된 이주민 지원 정책을 펼쳐 주길 바랐다. 김 센터장은 “의료 분야 외에도 사법과 교육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이주민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언어의 통역을 상시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확대된 이주민 지원 정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주민은 한국과 한국인의 동반자”라며 “이주민은 한국인을 대신해 농어촌과 제조업 노동 현장에서 궂은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는 이주민을 동등하게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 대부분이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입국했지만 편견과 차별 등으로 인해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주민 상당수가 불법 체류하고 있다는 편견이 담긴 시선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최장 체류 기간은 4년 10개월”이라며 “비자 만료 등으로 인한 미등록 체류 이주민은 20% 이하이며 대부분이 정식 비자를 발급받아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D3(기술연수)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3년 머물며 일하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1995년 입국했다. 연제구 어망공장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다. 그는 2006년부터 이주민 인권단체인 ㈔이주민과함께의 활동가로 일하며 한국어 교실 등을 열고 베트남 이주여성의 국내 정착을 돕고 있다.
김 센터장은 “노동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이주민 노동자가 산업재해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이주민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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