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수는 물 대신 나트륨… 노출돼도 바로 굳는 ‘차세대 소형 원전’

벨뷰/오로라 특파원 2023. 7. 2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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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 개발 美 ‘테라파워’ 가보니
크리스 르베크 CEO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주 벨뷰시에 있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의 ‘에버렛 연구소’. 약 1827평 크기 창고식 건물에 들어서자, 두꺼운 고무장갑 여섯 쌍이 부착된 밀봉 유리 실험대가 눈에 들어왔다. 숀 아크리 테라파워 수석 실험 엔지니어가 약 305도의 고열에 녹인 ‘솔라 솔트(Solar Salt)’를 금속 트레이에 붓자, 시럽처럼 투명하던 액체가 곧바로 딱딱한 고체가 됐다. 솔라 솔트는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SMR ‘나트륨’에서 열 에너지 저장, 전달에 쓰이는 용융염(鎔融鹽)으로, 질산나트륨과 질산칼륨의 혼합물이다. 아크리씨는 “솔라 솔트는 550도까지 안정적인 액체 형태를 유지하고, 대기에 노출되면 굳어버린다”며 “원전 사고에도 안전한 물질로 꼽히는 이유”라고 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지난 2008년 설립한 테라파워는 원자로 냉각에 물을 사용하지 않는 4세대 SMR의 대표 주자다. 후쿠시마 원전처럼 사고가 발생하면 오염수가 필연적으로 나오는 경수로와 다르게, 공기 중에 노출되면 굳는 물질을 활용하기 때문에 방사성 오염 물질 확산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테라파워의 핵심인 에버렛 연구소가 한국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픽=이지원
그래픽=이지원

◇4세대 SMR로 시장 공략

이날 연구소에선 나트륨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 다발 모형도 볼 수 있었다. 통상 4각형인 경수로의 핵연료통과 달리 벌집처럼 6각형 구조였다. 마이클 앤더슨 테라파워 선임 관리자는 “연료봉을 6각형으로 설계하면 여러 개의 연료봉을 더 촘촘하게 묶을 수 있고, 사이즈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여 전력이 필요한 곳에 쉽게 설치할 수 있는 SMR의 장점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연구소 한편에는 약 6m 높이로 여러 배관이 엮여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용융 염화물 특성 테스트 장비(IET)’가 작동하고 있었다. IET는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는 염소계 용융염 원자로(MCFR)의 개발을 위한 각종 실험 데이터를 얻는 장비다. MCFR은 고체 핵연료가 아닌 액체 핵연료를 사용하고, 크기가 작아 선박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제프 라트콥스키 테라파워 부사장은 “이 기계를 통해 용융염 사용에 따른 배관의 부식 특성과 열 교환 효율성 데이터 등을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 연구소 내부 1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주 벨뷰의 테라파워 에버렛 연구소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용융 염화물 특성 테스트 장비(IET)'의 모습. 높은 온도의 열을 가하면서 나트륨 냉각제 사용에 따른 배관 부식 속도와 열교환 효율성 등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 /테라파워

전 세계에서 SMR 개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물을 대신할 소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테라파워가 용융염을 주 재료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핵심 물질인 나트륨이 세계에서 가장 흔한 물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면 경수로보다 핵폐기물도 70% 줄어든다. 테라파워는 SMR의 상업화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규모의 미 정부 지원금을 받고, 2030년까지 와이오밍주에 인근 25만 가구가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345MW(메가와트) 규모의 SMR 실증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테라파워는 SK㈜와 SK이노베이션에서 2억5000만달러(약 3200억원)를 투자받는 등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르베크 CEO는 “2030년 이후 한국에서도 혁신 나트륨 원자로를 선보일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각국에서 70여 종 개발

SMR은 기존 대형 원전과 비교해 안전하고, 입지 제약이 적다는 장점이 부각되는 차세대 원전이다. 시장 조사 업체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SMR 시장 규모는 188억달러(약 2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테라파워가 있는 미국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캐나다는 물론 러시아, 중국 등 각국이 개발에 나선 SMR이 70여 종에 이를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다만 대규모 투자에도 상용화는 빨라야 2030년 전후로 예상되는 것은 난관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테라파워는 빠르게 상업화가 가능한 암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액티늄-22(Ac-225)를 캐시카우(수익원)로 삼을 계획이다. 르베크 CEO는 “SK바이오팜 등 한국 기업은 물론 여러 나라 제약업체와 액티늄-225의 활용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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