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누가 교육을 죽이는가
서울 서초동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다. 부임 2년차의 1학년 담임교사였다고 한다. 그동안 악성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왔다는 보도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여론이 거세지자 우파 언론과 인사들은 연일 ‘과도한 학생인권이 교권을 실추시킨 탓’이라며 학생인권 때리기를 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1일 한국교총 주최의 간담회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현장은 붕괴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대통령실에서는 이 사건을 “좌파 교육감들이 주도해서 만든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만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빚어진 교육파탄”으로 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모두 더 힘차게 학생인권을 때리라는 신호다.
이렇게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키며 교사·학생·학부모를 갈라치기 하는 것은 비겁하고도 악의적이다. 책임을 문제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넘기고, 현직 교사가 사망했는데도 그 의미를 헤아리기는커녕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권리의 증진은 늘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로 요구됐으며, 특권을 해체하고 보다 보편적인 권리를 수립하고 확장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왔다. 여성의 권리, 흑인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가 그러했다.
학생인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등장했던 그것을 가로막는 익숙한 문법도 알고 있다. 여성의 권리 증진은 남성의 권리를 축소하며, 흑인의 권리는 백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국내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한다는 논리 같은 것 말이다. 노인의 권리가 청년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 장애인의 권리 보장이 비장애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학생인권이 교권을 침식한다는 주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보편적 권리로서 인권은 사적 권리들 간의 절충된 총합이 아니다.
배타적 소유권에 기반한 사적 권리의 개념은 사회적 권력과 지배 관계를 은폐하는 데 유용하다. 강자의 권력과 약자의 권리를 분별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강자 간의 권력 관계가 형성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보지 않으면,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권리가 마치 저울 위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처럼 표상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사회적 권력 관계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권력관계는 어떠한가. 서초동에서는 통상 학부모의 사회적 권력이 더 크겠으나, 가난한 지역이거나 지역 농촌 학교라면 대개 교사의 권력이 더 클 것이다. 교사 내부 서열에서 힘 있는 교사는 자기보다 약한 교사에게 힘든 일과 책임을 떠넘기고, 관리자와 교육당국은 회피하고 방관한다. ‘서초동, 나이 어린 2년차 신참 여교사, 1학년 담임’이라는 키워드로 조합되는 삼각형은 바로 이런 권력의 구조를 설명한다.
역사적·사회적으로 교사·학생·학부모 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었나. 지난 30년간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속에서 특권층의 재력과 권력의 과시는 공공연해졌고 이에 대한 민중적 사회윤리의 제동력은 약화되었다. 신자유주의 교육 구조조정은 경쟁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학교를 시장화하고 교육을 상품화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교육서비스 기관이 되고, 교사는 서비스 제공자가 되었으며,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소비자로 차츰 변모했다. ‘갑질 학부모’는 ‘갑질 소비자’를 통해서 탄생할 수 있었다. 폐기해야 할 것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온 학생인권운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학교를 약육강식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신자유주의 교육이다.
‘오늘의 교육’에서 주최한 교권 토론회에서 들었던 한 교사의 말을 나는 오래 되새기고 있다. 정말로 교사가 처한 현실을 걱정한다면,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교권을 강화할 것인가로 바로 가기 전에 지금 학교에서 누가 취약한 존재가 되는가라는 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나이, 성별, 피부색, 외모, 장애, 빈부를 비롯해 주류 다수가 설정한 정상 기준 바깥에 존재하는 ‘비정상’으로 규정된 소수자들은 차별과 혐오가 강화될 때 특히 취약해진다. 이는 교사만 아니라 학생도 그러하고 학교만이 아니라 다른 노동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바꾸면 우리는 문제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지금 학교에서 증대하는 차별과 혐오, 폭력의 강도는 무엇 때문인가. 이 과정에서 어떤 존재들이 취약해지는가. 그들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지금이야말로 교사와 시민, 교육운동이 앞장서 학생인권 강화를 더 주장하고 싸워야 할 때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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