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비하인드] 치는 대로 듣는… ‘클래식 오마카세’도 있다
연주곡은 모른다. 그저 연주자의 이름만 알 뿐. 최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오마카세 스타일’ 공연이 늘고 있다. 오마카세는 일식(日食)에서 사전에 메뉴를 정하지 않고 요리사가 알아서 음식을 내주는 방식. 오는 10~11월 독주회를 앞둔 헝가리 출신의 피아노 거장 언드라시 시프(70)와 중국의 스타 피아니스트 유자 왕(王羽佳·36)이 대표적이다.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달리 수개월 전부터 연주곡을 미리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 애호가와 전공생들에게는 연주 레퍼토리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월 3~6일 서울·부산·경기도 수원에서 세 차례 독주회를 여는 시프는 연주 곡명은 물론, 작곡가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독주회 때는 ‘바흐·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곡 중에서’라고 대략적인 출제 범위라도 밝혔지만, 올해는 그조차 알리지 않았다. 11월 25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앞둔 유자 왕 역시 연주 곡에 대해서는 ’추후 공개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클래식에서도 ‘오마카세 스타일’이 조금씩 늘어나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늘어난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년에는 3~4년 전부터 세계 순회 공연의 구체적인 일정과 곡목까지 미리 잡아두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그런 관례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먼 미래의 저녁 식사 메뉴를 미리 고르지 않듯이, 미리 연주 프로그램을 짜두는 것도 부자연스럽다”는 시프가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해 11월 내한 독주회에서도 그는 직접 해설을 곁들여서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장장 3시간 40분 동안 연주했다. 오마카세라고 해서 결코 양이 적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예전에는 베토벤·모차르트·쇼팽 같은 작곡가들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면, 최근에는 연주자의 명성과 인기로 음악 시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방증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씨는 “곡목을 모른 채 연주자의 이름만 믿고서 공연에 간다는 건 관객과 연주자 사이에 ‘믿고 듣는다’는 신뢰가 쌓였다는 의미”라면서 “반대로 실연(實演)에서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결례로 비칠 우려나 위험성도 그만큼 크다”고 말했다. ‘깜깜이 공연’에는 아슬아슬한 스릴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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