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수해 현장 해병대원·무력한 교사… 공공재 남용이 비극을 부르고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3. 7.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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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수해 현장에서는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청춘들의 죽음 그 자체는 언제나 슬픈 일이지만 많은 이가 우려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이들의 죽음이 불가피하거나 우연적이지 않으며, 우리 사회가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이은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공공재에 대한 독점과 남용의 결과이다.

공공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국방, 교육, 사회간접자본시설 등을 가리킨다. 행정기관이 제공하는 각종 공공서비스 역시 모두에게 동등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공공재다. 공공재는 무한정 제공될 수 없기 때문에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이 이를 독점하게 되면 공공재는 역할을 상실한다. 공공재라는 것은 공원과 같은 유형의 물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군인, 교사와 공무원의 근무시간 역시 공공재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공공재를 남용하려면 이를 통제해야 한다. 원칙과 규정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공공재는 안팎으로 남용되면서 점점 무너지고 있다. 개인적인 편리함과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로 요구하거나 떼를 쓰는 모습은 이제 어느 곳에서나 익숙하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끝없이 ‘민원’을 제기한다. 이들의 부당한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불필요하고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민원에 대해서는 조직과 시스템이 이를 차단하고 구성원을 보호해야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친절함과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일과 시간 이후에도 시달리고 있다. 권한이 있는 책임자와 기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조직이 자신을 보호해주거나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구성원들은 모든 일에 대해서 규정과 절차를 들먹이며 방어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책임만 지우며 보호해주거나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 구성원들은 환멸을 느끼며 떠나게 된다. 이로 인한 비용과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결국 사회 전체가 감당하게 된다.

공공재는 그것을 담당하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자들부터 남용하고 있다. 마치 본인이 조직을 개인적으로 소유한 것처럼 개인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과도한 의전을 비롯해 사적 업무에 군인이나 공무원 등을 동원하는 행위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재난 상황에서 수색과 구조를 위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군 병력을 투입하는 것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공재를 남용하는 것이다. 예천 수해 현장에서의 해병대원 사망과 관련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있는 지휘관들의 지시 사항들을 보면 장병들의 안전을 위한 지시보다는 눈에 잘 띄는 빨간 티셔츠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본질과 관계없는 지시 사항이 훨씬 많다. 2022년 포항 홍수에서 상륙장갑차를 동원하여 이재민들을 구호하는 모습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떠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민원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욕설과 폭언, 기물 파손 등 위법 행위는 2018년 3만4484건에서 2019년 3만8054건, 2020년 4만6079건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공직사회에 입문한 지 5년이 경과하기 이전에 퇴직하는 조기 퇴직 공직자의 숫자가 2017년 5181명에서 2021년 1만693명이 돼 2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은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교직 생활에 만족한다는 비율은 2016년 70.2%에서 2020년 32.1%로 급락한 이후 계속 3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의 조사 결과 최근 1년간 이직·사직을 고민하는 교사 비율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야기한다. 정치권은 이를 증폭시키고,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처벌과 일벌백계는 순간적인 시원함을 주지만 정작 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도록 만들면서 상황은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공공이나 민간 모두에서 안전관리는 이제 누구도 담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업무가 되어가고 있다.

사회의 다수가 가해자이며 원인 제공자인 상황에서 처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이런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는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지 행위로 지정하고, 제71조에서는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이 정서적 학대 행위인지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 법률 조항으로 인해 이를 둘러싼 갈등은 보육과 교육 현장을 황폐화하고 있지만 모두가 회피에 급급할 따름이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스스로를 오로지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책임과 의무는 무시되고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잘못된 행동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와 시스템의 문제가 원인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권리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이를 어떻게 행사하고 다뤄야 하는지 고민과 논의는 없이 한정된 공공재를 더 많이 투입하는 것으로 대응하면서 시스템과 구성원들은 무너지고 있다. ‘고객이 왕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라는 표현도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모두가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의 공화국에서 전근대적인 권력관계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서로가 당당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질서와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제가 2023년 대한민국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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