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영조의 밥상 정치
영조의 건강 관리는 남달랐다. 그는 52년에 이르는 통치 기간에 무려 7284회나 진찰을 받았다. 사흘에 한 번꼴로 진료를 받은 셈이다. 영조는 식습관 또한 철저하게 다스렸다. 임금은 보통 하루 다섯번 밥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조는 식사를 세 번으로 줄였다. 그나마도 그가 즐겼던 음식은 맥(麥)수라, 즉 물에 만 보리밥과 고추장 정도다.
영조의 빈틈없는 건강관리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기도 했다. 이토록 꼼꼼하게 자기를 챙기는 왕이 쉽게 죽거나 무너질 리는 없어 보였다. 그러니 관료들도 딴생각 품을 엄두를 못 냈다. 왕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통치한다면 당연히 그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영조는 밥상 정치에도 뛰어났다. 소젖을 넣어 끓인 타락죽은 임금이 즐겨 먹던 보양식이었다. 때때로 영조는 타락죽을 더 이상 올리지 말라고 명했다. 어린 송아지가 암소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측은하게 여겼던 까닭이다. 말년의 영조는 일년에 스무근 넘게 인삼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관료들에게 이런 자신이 부끄럽다며 인삼을 적게 올리라고 거듭해서 말했다. 백성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듯 밥상에서 보이는 임금의 따뜻함은 민심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영조는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 번 ‘각선(却膳)’을 하기도 했다. 말 안 듣는 신하들에게 맞서 ‘금식 투쟁’을 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처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뭐하러 먹고 병을 치료하겠는가? 후세가 내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며 비웃을 텐데.” 왕조 국가에서는 임금의 건강을 상하게 하는 짓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밥상을 물리치는 왕 앞에서 신하들은 번번이 꼬리를 내렸다. 반대로 영조는 자신에게 맞섰던 당파의 수장에게 수라상을 같이 들자며 통 크게 제안하기도 했다. 밥상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통치 철학을 담아낸 셈이다.
우리 시대에도 식사는 중요한 정치 행위다. 주요 지도자들이 벌이는 만찬의 메뉴와 형식은 여러 해석을 낳지 않던가. 정치인들의 밥상을 살펴보며 그들의 시대정신과 철학을 읽어보면 어떨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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