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성별을 묻지 마세요
외모, 복장, 말투만으로도 지정 성별을 쉽게 판단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성별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의심 어린 눈초리로 흘겨보거나, 본인이 맞는지 재차 확인한다. 은행에서도, 병원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주민등록증을 요구받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지난 7월11일 청소년 성소수자 8명이 전국연합학력평가와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일부 과목에서 OMR 답안지에 성별을 표기하도록 한 것이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제하고, 학생의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문제지가 아니라 답안지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절망감을 느껴야만 했다. 고민 끝에 성별 기입란을 공란으로 두거나, 자신이 원하는 성별정체성대로 성별을 표기한 일부 학생들은 담임교사에게 불려가 꾸중을 듣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알려져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수험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성별을 수집한다고 하지만, 트랜스젠더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성별을 확인하는 것이 과연 인권적인 교육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시험에서만 성별을 요구하지 않는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도, 반 번호를 지정할 때도, 줄을 세울 때도, 교복을 입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탈의실을 이용할 때도 성별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성별 이분법으로 나뉜 학교생활은 트랜스젠더 학생들에겐 고통일 뿐이다. 존재를 부정당한 경험은 쌓이게 되고, 학교를 떠나야만 불안에서 해방된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상담통계(2022)에 따르면 전체 내담자 중 51.7%가 성별정체성을 고민하는 트랜스젠더·젠더퀴어 청소년이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학교와 가정으로부터 갈등을 경험하며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였으며, 진로와 학업, 탈학교 및 학업중단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0)에서도 중·고등학교 재학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92.3%가 학교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해 한 가지 이상 차별을 경험했고, 심지어 21.3%가 학교에서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성정체성을 평균적으로 인지하는 시기는 14.7세, 수용하는 시기는 17.8세라고 조사된 바 있다. 이 시기 대다수의 성소수자 학생들도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차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OMR 카드 성별 기재란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야 한다는 것, 평등하게 교육받고 싶다는 성소수자 학생들의 외침은 성별 이분법으로 나뉜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균열을 내는 변화를 만들 것이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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