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각자 마을을 ‘기록’했다, 공동체 아카이브가 생겼다
- 주민 72명이 사진 1051점 출품
- “주민 네트워크·공동체 부활 의미”
많은 주민이 자기만의 관점·방식으로 마을을 꾸준히 기록하는 일이 ‘프로그램’이 된다면, 공동체와 주민 개인에게 어떤 변화와 가능성이 생길까.
부산 북구와 북구문화도시지원센터는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사람×기록+이야기÷ 전(展)’을 KTX 구포역 앞 북구 문화예술플랫폼에서 열었다. 이 전시는 문화도시 지정을 목표로 다채로운 활동을 펴는 북구의 문화도시 예비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문화예술플랫폼 2층에서는 ‘우리 동네 기억 사진·영상을 수집합니다’ 기록공모전 수상작 전시가 마련됐다. 3층에서는 북구문화도시지원센터가 진행하는 ‘북구 도시아카이브 사업’에 참여 중인 시민기록 활동가(이음북구기록가)의 올해 성과를 기획전시했다.
공모전에는 북구 주민 72명이 다양한 사진 1051점을 출품했고, 10인이 수상해 작품을 전시했다. 성과 공유 전시에는 현재 이음북구기록가로 활동하는 북구 주민 26명이 북구 5개 권역인 덕천·만덕·화명·금곡·구포를 무대로 ‘기록 내공’을 선보인 작품을 내놓았다. 이음북구기록가 26명은 인터뷰 10건, 사진 12개 주제 240건, 그림 5건, 영상 10건을 성과물로 전시했다.
23일 끝난 이 전시는 자칫 건조한 작업으로 인식하기 쉬운 ‘기록’이 공동체 문화에 생기를 불어넣고, 주민 사이에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며, 참가자 개인의 참여의식과 지역문화에 관한 애정을 끌어올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였다. 지난 20일 현장에서 전시 관계자 6인을 만났다.
2년째 북구의 도시아카이브 사업을 이끄는 기록문화 연구가이자 아카이브 전문가 배은희(47) 빨간집출판사 대표와 스태프 염수정(28) 씨, 이음북구활동가인 김정곤(70·북구문화해설사·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최기봉(62·전 북구 문화체육과장·전 북구평생학습사업소장) 장선호(39·화명동 주민) 씨, 북구문화도시지원센터 김성순(35) 사무국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김정곤 씨는 ‘덕천천과 덕천동 자연마을’ 제목으로 마을을 역사·문화·생태 관점에서 기록한 사진 20여 점을 출품했다. “북구에는 자연마을이 32곳 있는데, 이번엔 덕천천을 중심으로 기록했어요. 구석구석 다니며 주민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는 “북구 도시 아카이브 사업에 참여하며 마을을 기록하는 일이 옛날 동네마다 집마다 있던 ‘우물’과 ‘사랑방’ 구실을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옛날엔 우물을 중심으로 주민이 함께 같은 물을 마시고, 이야기 나누며, 좋은 관계를 가꿨다. 그는 스스로 마을을 기록하고 공부하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 공동체 기록 활동을 잘 활용하면 훨씬 더 살 만한 마을을 만들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장선호 씨도 많은 장점을 짚었다. “저는 부산에 연고가 없었다. 결혼하면서 대구에서 화명동으로 왔다. 주민 활동이 활발한 화명동에서 자연스럽게 이음북구기록가가 됐는데, 마을의 사람·문화·역사를 알아가는 재미가 참 크다. 이음북구기록가로 활동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공동체를 가꿀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더라”고 소감을 말했다.
최기봉 씨는 “만덕 남문마을 상이용사 공동체의 역사를 현장 취재해 출품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 역사가 부산진구 당감동 등지로 이어졌음을 알았다. 관련 조사·기록 활동을 추가할 필요를 느꼈다”며 지역문화 탐구의 ‘확장 효과’를 말했다. 그는 ‘우리 동네 기억 사진·영상을 수집합니다’ 기록공모전 심사위원장도 맡았다. 그는 “심사하면서 동네에 대한 주민의 애정을 보았다”고 덧붙였다. 배은희 대표, 염수정 씨, 김성순 사무국장은 “이번 기획을 진행하면서 도시 아카이브 작업을 잘 설계하면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갈수록 약해지는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고 가꿀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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