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복숭아를 제사상에 안 올리는 이유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는 입맛을 잃기 쉽다. 이런 때 많이 찾는 것이 과일이다. 요즘은 가짓수도 많고 값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많이 먹지만, 과일은 예부터 귀한 먹거리였다. 요즘 흔한 귤이 조선시대에는 뇌물 목록에 포함됐을 정도다.
귀한 과일 중에서 그나마 흔했던 것이 복숭아다. 복숭아가 흔했던 사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복사골’이란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복사골은 “복숭아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를 한자로 쓴 것이 ‘도화동(桃花洞)’과 ‘도화리(桃花里)’다. ‘복사’는 복숭아의 준말로, “발목 부근에 안팎으로 둥글게 나온 뼈”를 ‘복숭아뼈’ 또는 ‘복사뼈’라 한다.
복숭아가 흔했다는 사실은 자두·앵두·호두 같은 열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의 한자 이름은 紫桃(자도)·櫻桃(앵도)·胡桃(호도)로, 모두 ‘복숭아 도(桃)’ 자가 들어 있다. 한자 그대로 풀면 붉은 복숭아, 벚꽃만 한 복숭아, 오랑캐 나라에서 건너온 복숭아다. 우리 조상들이 복숭아밖에 모르던 시절에 복숭아에 빗대어 지은 이름인 것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복숭아나무는 열매를 신선들이 먹는다고 여겨 예부터 신성시해 왔다. 특히 복숭아나무는 민속신앙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쫓아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다.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와 반대로 귀신을 쫓아서는 안 될 상황에서는 복숭아가 오히려 금기시됐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것이 그 예다. 또 집 울타리 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조상신이 집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음택(陰宅)에 사는 귀신을 내쫓는 복숭아는 양기를 가득 품은 과일이다. 이 때문에 “초복에는 삼계탕 같은 고기를 먹지만 중복과 말복에는 복숭아를 먹는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여름 보양식으로 여겨져 왔다. 주변의 나쁜 기운을 쫓고 몸에 원기를 불어넣는다는 복숭아. 요즘이 딱 제철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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