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정전 70년,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경기일보 2023. 7.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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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걸 국립생태원 박사

1953년 7월27일.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 및 중국 대표가 판문점에 모였다. 악수와 인사도 없이 그저 침묵 속에 정전협정 서명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2년 넘게 끌던 지리멸렬한 회담과 3년을 넘긴 광기 어린 전쟁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정전협정문 제1조 1항에는 ‘1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각 2㎞ 후퇴함으로써 설정된 공간’이 명시됐다.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적 완충지대 즉 비무장지대(DMZ)가 탄생했다.

휴전 중인 분단국가에서 태어난 나 또한 무수한 선배들이 그러했듯 의지와 상관없이 군복을 입고, 총자루를 쥐었다. 버스는 끊임없이 북쪽을 향해 달렸고, 더 이상 북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내려졌다. 남방한계선 철책 앞에 선 초병이 됐다.

분단의 시린 풍경은 일상이 됐다. 경계근무 시에 철책 너머를 주시하다 보니 자연스레 야생이 눈에 들어왔다. 오렌지빛 투광등 아래 단골손님은 고라니와 멧돼지였다. 이따금씩 삵의 사냥 장면을 훔쳐볼 수 있었다. 야생동물과의 조우는 고단한 군 생활 중 자연이 주는 작은 위로였다.

북에서 잠을 잔 기러기 떼는 아침이 오면 일사불란하게 편대비행을 해 남으로 내려왔다. 철책 위 걸려있는 윤형 철조망엔 쇠부엉이 한 마리가 즐겨 앉았다. 녀석은 북쪽 쥐와 남쪽 쥐를 번갈아 낚아 올렸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DMZ 내부 습지에는 한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몸을 말아 잠을 자는 두루미 가족이 보였다. 독수리는 날갯짓 한번 없이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에 떠 있었다. 범상 비행원의 남과 북에 걸쳐있었다. 새들에게는 이념도 국경도 없었다.

마냥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북에선 사계청소를 위해 주기적으로 불을 질렀다. 거센 화마가 DMZ 숲과 초지를 태웠다. 땅을 파헤친 멧돼지가 건드렸는지 가끔 지뢰 폭발음이 들렸다. 대남, 대북 선전방송의 악다구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기를 채웠다. DMZ 자연은 인간의 직접적인 개발과 밀렵 행위로부터는 자유로운 한편 군사 활동으로 인한 교란은 끊임없이 받으며 천이가 이뤄지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제는 생태조사를 위해 DMZ 일원을 방문한다. 여러 구간을 누비고 조사해보니 DMZ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밀도와 개발압력이 높은 온대지역에서 개발을 피해간 곳은 드물다. DMZ는 온대지역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생태의 보고다. 또한 사빈해안, 석호, 산지, 구릉, 범람원, 묵논, 갯벌 등 다양한 서식지가 동서로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며, 남방계 북방계 식물이 만나는 곳이다. 사향노루, 반달가슴곰 등 다양한 멸종 위기종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오는 27일로 70주년이 된다. 선배들이 지키던, 한때 내가 서 있던 DMZ 초소에 이제는 MZ세대들이 서 있다. 분단의 아픔은 세대를 건너 이어지고 민족 간 갈등과 불신은 여전하다. 한편 DMZ 자연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보듬고 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 짙어져 가는 DMZ 녹음을 우러러보며 진정한 전쟁의 종결과 평화의 도래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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