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중기간 경쟁제품제도

경기일보 2023. 7. 24. 03: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홍성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그레샴 법칙(Gresham’s Law)으로 불리는 이 표현은 이론적으로 소재의 가치가 서로 다른 화폐가 동일한 명목가치를 가진 화폐로 통용되면, 소재 가치가 높은 화폐(Good Money)는 사라지고 소재 가치가 낮은 화폐(Bad Money)만 유통되는 현상을 말한다. 선택 오류나 정보 부족 등의 이유로 나쁜 것이 좋은 것을 압도하는 경제적·사회적 병리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우리 주변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고차 시장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 상태에 관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성능이 좋은 중고차(양화)는 시장에서 없어지고 품질이 나쁜 중고차(악화)만 남게 된다. 이를 가리켜 시고 맛없는 레몬만 널려 있는 시장이라는 뜻으로 레몬마켓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반값 쇼핑몰의 경우에도 양심적으로 제값을 받고 있던 상인들보다는 처음에는 높은 가격을 책정한 뒤 반값 쇼핑몰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가격을 떨어뜨림으로써 양화(양심적 상인)을 악화(비양심적 상인)가 밀어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악화의 난립이 결국 양화를 쫓아내는 현상이 2022년 기준 196조원 규모의 공공조달 시장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바로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공공조달 시장에서 말이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중소기업 계약실적은 전체의 63.7%에 달하는 124.9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공공조달 목표 중 하나가 장애인기업, 여성기업 등 사회적 약자 기업의 보호와 중소기업의 육성에 있다는 점에 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중소기업 판로 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만든 제도가 오히려 우량한 중소기업(양화)의 육성 발전을 저해하고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악화)만이 공공조달 시장에 잔류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2007년 정부는 단체수의계약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라 공공기관은 공사용 자재를 비롯해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구매 시 중소기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경쟁 또는 지명경쟁해 조달계약을 체결해야만 한다. 그러나 연구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의 혜택을 받은 중소기업이 자생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공공조달 시장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있다. 또한 경쟁력이 없는 일부 중소기업의 과점현상도 매우 심각해 혁신적이고 우수한 중소기업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도 더 이상 제도의 보호에 기대선 안 된다. 시장에서 날 선 경쟁이 살아 있어야 하고, 현장에서 뜨거운 기업가 정신이 샘솟아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조달을 통한 중소기업 보호도 어디까지나 창업, 기술에 국한하고, 중소기업의 ‘협력과 경쟁’을 육성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 시작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제도의 폐지 또는 대체제도 도입을 통해 혁신 공공조달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