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기생충의 추억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2023. 7. 24.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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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1962년) 때 '기생충학' 강의를 들었다.

필자가 경기고등학교 선생 때 기생충박멸협회가 통보해온 결과를 살펴보니 몇몇 녀석의 이름 옆에 숫제 '개똥' '된장'이라고 쓰여 있었지.

이럴 때 고등학생 우리 형님은 담배 한 대를 피우셨지.

그리고 기생충학을 담당한 이주식(李周植)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자네들 중 조충에 걸린 사람 있으면 그것 잘 보관하게나. 나중에 박물관에 서 있게 될 걸세"라고 하신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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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대학 3학년(1962년) 때 '기생충학' 강의를 들었다. 공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은 모두 별세하셨고 이제 대학 은사님은 한 분도 살아계시지 않는다. "세상에 섬길 분이 없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하는데 세월도 무심해 결국 우리 제자들이 저승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그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는 암울하고 참담한 '기생충 천국'이었고 한 사람이 십이지장충, 편충, 요충 등 여러 가지 기생충에 감염됐으며 큰 회충이 항문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목구멍으로 꾸물꾸물 넘어오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면 세월이 참 빠르다. 세는 나이로 올해 쉰다섯 살이 된 큰딸내미가 까마득한 중학생 때 일이다. 그날따라 일찍 집에 와 화단에서 나무 손질을 하고 있었는데 딩동! 딩동! 달려가 대문을 열어준다. 딸내미가 다녀왔다는 인사도 없이 후닥닥, 짜증 난 얼굴로 휭~~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왜 저러지? 저런 아이가 아닌데…. 주눅든 아비는 전전긍긍 딸의 눈치를 살핀다. "혜성아, 너 왜 그러니…." 한참을 구슬리고 추어올리고서야 제풀에 "나 오늘 아빠 탓에 창피당했단 말이야" 하고 정색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청천벽력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알고 보니 뿔나고 열받을 만하다.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권혜성, 회충 스리플러스(+++)!" 학생들은 온통 까르르 배꼽을 쥐고…. ('+'는 회충 알 수에 비례함.) 그런데 문제의 불씨는 나에게 있었다. 이른 아침에 등교하느라고 그만 학교에 낼 대변봉투를 준비 못한 그 애가 급한 김에 망신살이 뻗칠 것도 모르고 아빠 것이라도 달라고 해서 덥석 가지고 간 게 탈이었다. 결국 '+++'는 나의 대변검사 결과였던 것. 그래서 "아빠 때문에 창피…"란 말이 나왔다. 그래도 그만하면 약과요 양반이다. 필자가 경기고등학교 선생 때 기생충박멸협회가 통보해온 결과를 살펴보니 몇몇 녀석의 이름 옆에 숫제 '개똥' '된장'이라고 쓰여 있었지.

정말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 요새는 회충감염률이 0.05%에 지나지 않아 '변검사'가 없어지고 되레 기생충 보호를 부르짖어야 할 터수가 되고 말았지만 그때는 학교에서 봄가을에 거르지 않고 대변검사를 했다. 콩알보다 큰 대변 덩이를 비닐봉지에 담아 실로 창창 동여맨 뒤 종이봉투에 넣고 봉해서 낸다. 기생충박멸협회가 대변검사를 해 기생충이 있는 사람에겐 구충제를 먹였다.

선형동물(線形動物)인 희뿌연 회충(蛔蟲, Ascaris lumbricoides)을 보통 거위·거시라 부르며 기생충치고 한살이(일생)가 복잡다단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까닭을 알 길 없다. 회충 알이 거친 푸성귀에 묻어 들어와 소장에 다다라 부화하고 갓 깬 애벌레는 소장 벽을 뚫고 들어가 정맥→문맥→간→간정맥→심장→폐→기관→후두→인두→식도→위까지 몸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다 드디어 소장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회충은 기생충 중에서도 큰 축에 들고 자웅이체로 암놈이 좀 크며(20~35㎝) 수놈 꼬리 끄트머리에 뜨개질바늘 코 닮은 날카로운 생식기(交尾器)가 있다. 그런데 이놈들이 생식시기가 되면 암수가 한 곳으로 와글와글 모여들어 얽히고설켜 커다란 덩어리(mating ball)를 지으며 이것이 창자를 세게 눌러 배앓이를 하게 하니 이를 '횟배'(거위배)라 한다. 이럴 때 고등학생 우리 형님은 담배 한 대를 피우셨지.

그런데 요새 와선 회충 따위를 배 속에 키워 체중을 빼는 사람도 있다니 세상이 옛날 같지 않다. 그리고 기생충학을 담당한 이주식(李周植)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자네들 중 조충에 걸린 사람 있으면 그것 잘 보관하게나. 나중에 박물관에 서 있게 될 걸세"라고 하신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머잖아 기생충도 지구에서 사라지고 말 것임을 예견하신 스승님의 선견지명에 새삼 감탄하게 되누나!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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