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세상이 변해서 계절도 변했을까
하 수상하다.
자연은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꿔 계절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해 줬다. 그럼에 봄은 따뜻하고 여름은 덥고 가을은 서늘하고 겨울은 추워 계절은 명확했다. 그 사이사이 꽃샘추위, 장마와 폭염, 태풍과 삼한사온도 있어 자연은 그렇게 계절의 균형을 잡으며 봄은 ‘온화’하고 여름은 ‘쨍’하며 가을 ‘청명’하고 겨울 ‘포근’했던 기억들을 남겼다.
단어조차 이뻤다. 옛 계절은 그랬다.
세상이 변해서 계절도 변했을까?
언제나 뉴스 일기예보에서 최고 기온을 장식하던 춘천과 대구는 춘프리카, 대프리카(아프리카 같은 더위의 춘천·대구), 춘베리아(시베리아와 같은 추위의 춘천)로 불린 지 오래다. 이렇게 여름은 부채와 선풍기로도 해결 안 되는 살인적인 폭염으로 에어컨을 종일 돌리고 겨울은 히터 켜고 반팔 입고 살며 지구의 온도를 점점 높여만 간다. 빙하는 녹고 어종들은 바닷길을 바꾸고 은근했던 장맛비는 물 폭탄이 되어 강둑을 넘어 오래된 삶의 자리를 할퀴고 지나간다. 이제는 맑은 날에도 불쑥불쑥 물폭탄이 우리들의 일상을 폭격한다. 계절은 균형도 잃고 이뻤던 계절 단어들은 ‘살인’, ‘폭탄’과 합쳐져 전쟁 속에 있는 듯하다. 자연이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번 폭우로 인해 남부 지방에서는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그분들의 명복을 마음 깊이 빌어본다.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재난·재해라 불리지만 뒤에 숨어있는 인재(人災)의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오늘의 날씨’이니 찾기 힘들듯도 하다.
어쩌면… 세상이 부조리해 계절도 균형을 잃은 건 아닌지. 자연이 이렇게 살인(?)을 시작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무섭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하수상한 계절 한가운데 서서… 모두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외부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서서 말이다. 나 또한 배우와 연출로 연극하며 먹고살고 있다. 현재는 서울 정동극장에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진행되고 있고(7월16일~8월6일) 12월에는 노벨상을 받은 영국의 작가 헤럴드 핀터의 ‘컬렉션’을 세종문화 회관 S시어터에서 서울시립극단 공연으로 올린다. 나름 바쁘게 보이는 삶을 살아간다.
연극으로 들여다보자면, 세상사만큼의 다양함이 있는 연극 중 부조리극이 있다. 글자 그대로 부조리는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며 비합리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성질 혹은 행위, 불합리, 모순, 불가해(不可解) 등을 뜻한다. 참, 요즘 계절 같지 않는가.
프랑스 극작가 알베르 카뮈는 자신이 쓴 ‘시지프의 신화(The
Myth of Sisyphus)’에서 “인간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부조리하며 목적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했고 2008년부터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SCOT(Suzuki
Company Of Toga)의 일본의 대표 연출가 스즈키 타다시(鈴木忠志) 또한 그의 연극 세계를 통해 “세상은 정신병동이며 아무도 제어할 수 없다”로 세상을 읽어내며 부조리한 세상에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많은 인간군상 들을 무대 위에 그려 내고 있다.
부조리극의 특징 안에서의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자기모순적인 성격, 의사소통의 혼란, 언어가 과연 인간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듯한 대사를 사용하고 인간에 대한 묘사는 절망과 혼동 불안을 느끼는 버려진 존재로 무대에 존재한다. 세상이란 무대의 우리들처럼.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 믿을 수 없다. 진실이라 말하는 거짓말이 그럴싸하지 않아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몰라 헛웃음이 나온다. 이 위협의 코미디는 거짓말에서 비롯된다. 거짓말이 쌓아놓고 대화를 하고 있는 부조리함 속에 우리들은 거짓의 매너리즘에 빠졌다.
다음 작품 부조리극 형식의 ‘컬렉션’을 준비하며 지금 세상에서 내 자리의 몫을 지키는 힘이 필요하다 하겠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말이다.
■ 변유정 △춘천 △SCOT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문화체육관광부 젊은예술가상(연극 부문) △대한민국연극대상·연출상 △자랑스런강원여성상 △강원도 적극행정위원 △춘천시 문화예술진흥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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