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열병식용’ 北 군대의 허장성세
사흘 뒤면 김일성광장을 지나는 고물 군용 장비를 향해 만세를 외치는 눈물 글썽한 평양 시민들을 화면에 띄워놓고, 남녀 방송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무적의 강군’ ‘최강의 정신력’을 몇 시간 동안 찬양할 것이다.
쭉정이가 허세는 더 지독하다. 세계에서 매년 열병식을 하는 곳은 북한과 러시아인데, 북한은 올해만 열병식을 두 번째 한다. 가히 ‘열병식용 군대’라 할 수 있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은 그래도 등장하는 무기 스펙이 북한보다 월등히 앞선다. 세계 군사력 2위라는 후광까지 더해져 러시아군은 정말 강한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전쟁이 터지니 러시아군이 얼마나 허약한지 세계가 알게 됐다. 지독한 부패가 수십 년 동안 파먹은 러시아군은 신병이 군모와 군화, 방탄조끼, 배낭, 침낭, 상비약 등 필수 물품을 돈 주고 구입해야 한다. 유효 기간이 20년은 지난 전투식량을 들고 참전한 군인들은 약탈을 하면서 서로 총을 겨누고, 전리품을 차에 실어 러시아로 보낸다. 군대가 아니라 마피아다. 국방비 상당 부분이 호화 요트 구입에 사용됐다고 전직 외교장관이 실토할 정도다.
러시아가 자랑해 온 최신 무기들은 뚜껑을 여니 ‘뻥스펙’이었다. 누구도 못 막는다며 장담하던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은 쏘는 족족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에 요격된다. 흑해함대의 기함 ‘모스크바’ 순양함은 순항미사일 두 발에 침몰한다. 세계 최강이라며 열병식까지 나왔던 T-14 전차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러시아가 이 정도면 북한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부정부패는 북한이 단연 세계 최강이다. 군인들이 전차 배터리를 가정용 배터리로 사용하고, 빼돌린 항공유가 등잔 연료로 팔린 게 30년이 넘었다. 배고픈 군인들의 약탈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장비가 고물이면 정신력은 뛰어날까. 국방장관의 아들딸이 전쟁 중에 두바이에서 돈을 쓰느라 정신이 없는 러시아는 이런 측면에서도 북한과 유사하다. 변방의 가난한 사람들, 심지어 죄수까지 전선에 투입되지만, 핵심 계층이 많이 사는 모스크바엔 징집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북한으로 비유하면 평양은 빼고 삼수갑산 산골에서 농사짓던 사람들만 모아 전선에 보내는 식이다. 변방은 여론이 악화돼 봐야 얼마든지 진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로 사라진 국방비 공백을 가난한 집 자식들이 목숨을 갈아 넣어 메운다.
북한은 군 장성은 물론 고위 간부들의 자녀들은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민들은 다 아는 상식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인민은 수십만 명씩 굶어 죽어도 지도자의 자식들은 해외에서 호화롭게 사는 게 북한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인민은 밀수도 못 하게 꽁꽁 국경을 막아놓고, 김정은은 호화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세심하게 사 간다. 북-중 무역통계를 보면 ‘코코아가 들어 있지 않은 사탕 2kg, 피아노 1대, 접이식 의자 5개’ 등으로 김 씨 일가를 위한 사치품은 핀셋처럼 집어간다. 이러면서 김정은은 인민에겐 “설탕, 식용유, 조미료가 없다고 불평하지 마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체제를 위해 누가 목숨을 바치겠는가.
허세는 상대를 얕잡아 봐야 완성된다. 미군은 6·25전쟁 때 142명의 장성 아들이 참전해 이 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의무 입대가 아니라서 굳이 참전하지 않아도 되지만, 명예를 걸고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은 연인원 180만 명에 사상자 비율은 약 8%였다. 미 장성 아들들의 사상 비율은 일반 병사의 3배 이상인 25%였다. 이런 미군을 북한은 겁쟁이들뿐이라고 교육한다.
북한을 보면 한 세기 전 중국 대문호 루쉰이 묘사한 아큐식 정신승리법을 국민교육헌장으로 도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 열병식에서 방송원이 떠드는 정신력은 현장 시찰도 귀찮아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의장에 나타나는 김정은에게서 먼저 보고 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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