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中 외교부장 잠적 미스터리
이유 모른 채 한 달째 행방불명
불륜설·실각설 등 추측만 난무
당국 ‘침묵’… 국제사회 신뢰 저하
중국은 지난 4일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방중 일정을 취소한다고 EU에 통보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지난 10일 중국을 찾아 친강(秦剛)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과 만날 예정이었다. 친 부장이 보렐 대표 방중에 맞춰 지난달 말 베이징 주재 EU 회원국 대사들과 예정했던 오찬도 직전에 취소했다.
하지만 불과 나흘 만에 갑자기 기류가 변했다. 건강 문제에 대해 들은 바 없다던 왕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친강 부장은 신체(건강) 원인으로 아세안 회의에 참석하기 어렵다”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에 친 부장 대신 왕이(王毅)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이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친 부장의 공식 행보는 지난달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스리랑카·베트남 외교장관, 러시아 외교차관 연쇄 회담이 마지막이었다. 친 부장이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지 2주 만에 중국이 공식적으로 그의 잠적을 인정한 것이다.
당국의 발표에도 친 부장과 관련해 중병설, 불륜설, 기밀 유출설 등 확인되지 않은 다양한 추측이 쏟아졌다.
잠적 초기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얘기가 나왔지만 한 달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얘기는 쏙 들어갔다. 다시 복귀할 정도의 병세라면 잠시 동안 마자오쉬(馬朝旭)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대행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당 소속인 중국 외교 1인자인 왕 위원이 외교부장 자리를 대신했다.
이어 친 부장이 유명 방송국 아나운서와 사이에서 혼외자를 출산했고, 아나운서가 미국에서 출산한 것이 친 부장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나왔다. 아나운서가 간첩 혐의를 받고 있어 친 부장이 연루됐을 수 있다는 내용도 덧붙여졌다. 또 중국 로켓군부대 지도부의 아들이 미국에 있을 때 관련 정보가 미국 정부에 넘어갔는데, 그 시점이 친 부장이 주미대사 재직 당시여서 연관됐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혹은 증폭돼 외교부 내 권력 암투설마저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자신의 기고에서 친 부장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고 주장한 중국 전문 프리랜서 작가 필립 커닝햄은 “나는 SCMP가 왕이, 자오리젠(趙立堅)과 충돌하는 친강의 문제 같은 (중국의) 정치 사안을 파고들 만큼 충분한 편집 독립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왕 위원과 지난 1월 외교부 대변인에서 국경·해양사무사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좌천됐다는 얘기가 나온 자오리젠이 친 부장과 사이가 좋지 않고 이에 내부 권력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언급을 한 것이다.
무엇이 맞는지 아직 알 수 없다. 대외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친 부장의 잠적에 대한 각종 소문은 더 늘어날 것이다.
친 부장은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늑대전사(전랑)’ 외교를 대표하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신임을 받았다. 주미 대사에서 지난해 말 외교부장 발탁에 이어 석 달 만에 국무위원 겸직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이런 인물이 확실치 않은 이유로 사라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중국 특성상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각종 의혹 꼬리표를 단 친 부장이 대외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지 묘연하다. 중국은 어제까지 협상을 하던 정부 고위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확인한 것이다.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사국인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시진핑 1인 체제하에서 내부 정치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뭐라 하든 1인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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