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자기 통제 망각한 인권은 괴물이다

2023. 7. 2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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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의 안타까운 선택 두고
학생 인권 남용으로 몰아선 안 돼
과잉 애정의 잠재적 리스크에서
교권 보호 현장시스템 구축 시급

오랜 정치 논쟁에도 학생인권조례가 가져온 변화는 절대 작지 않다. 어린 학생들을 체벌과 억압적 관행으로부터 보호하고, 스스로 자율적인 주체로 거듭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지난 10여년간 아동 인권이 뿌리내리면서 학생들은 교복이라는 하나의 선택지에 갇히지 않고 체육복과 생활복이란 대체재를 손에 넣었다. 규율에 익숙했던 학생들이 취향과 선택의 의미를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다. 등하굣길을 걷다 보면 체육복이나 생활복을 입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 학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자율과 권리를 경험한 이 학생들이 이제 번듯한 사회초년생이 되어 우리 사회와 기업을 바꾸고 있다. 집단주의와 상명하복식 문화에 익숙했던 기업이 개인의 워라밸을 중시하고 소통을 강조하는 수평적인 조직으로 변모하는 데 이들의 인권 DNA가 밑바탕이 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이라는 신무기가 쥐어지면서, 이들은 기존의 위계적 시스템을 뒤흔들고 새로운 유연하고 참여적인 시스템을 건설하고 있다. 나아가 기후변화로 신음하는 지구, 이미 가족 구성원이 된 반려견에게 자신의 인권을 나누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로 출발한 인권 기획은 이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신인류의 등장으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신임 교사의 안타까운 선택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가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생 인권의 남용이 문제라기보다는 학생 신분에서 곧장 교육자의 지위로 이행한 젊은 교사들의 취약한 인권, 또 이들을 보호해 줄 시스템의 부재가 더 큰 문제이다. 헬리콥터 부모의 극성과 과도한 민원으로부터 젊은이들을 지키고 또 이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끔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자녀 수가 급감하고 외동이 많아지면서 아이에게 애정을 집중할 부모의 여력이 커진 반면, 과잉 애정의 잠재적 리스크에 맞설 교사들의 대응력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단순히 교권 부재의 문제라기보다는, 나이와 경력을 중심으로 계층화된 현실 속에서 위계와 압박에 취약한 젊은 교원들이 냉혹한 현실로 내몰린 상황, 또 이를 바로잡지 못한 기성세대의 무능으로 봐야 한다(이 중 대다수의 초등학교 교사는 여성이다). 상사의 갑질과 괴롭힘을 피해야 하는 일반적 직장 상황에 더해 어린 교사들은 경제력과 학력, 또 네트워크를 겸비한 학부모들의 과도 민원과 괴롭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고학력 부모가 밀집한 강남, 서초, 신도시 근무를 기피하는 풍조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따라서 학생 인권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비통한 사태를 낳은 원인이라는 인식은 적절치 않다. 학생 인권을 충분히 존중하되, 관심이 부족했던 교사들의 권리 보호에 빈틈은 없는지, 특히 방어 능력이 취약한 젊은 교사, 여성 교사들이 과도한 신체적 정신적 압박하에 고통받고 있지 않은지 철저히 점검하고 합당한 법적 체계와 현장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당한 교육 지도가 아동학대로 왜곡돼 소송의 대상이 되거나, 민원 관계에 있는 학생과의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현장의 실태, 무책임한 학생과 부모로 인해 교사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 책임 범위를 학부모로 확대하는 것을 포함해, 학교라는 하나의 직장에서 교육 근로자의 인권이 보장되고 일할 동기가 확보될 수 있도록 모든 가용한 조치가 신속히 취해져야 한다. 필요한 선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합당한 책임을 요구하는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필요하다.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돌보고 교육하는 교사도 고귀한 인격과 존엄을 갖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뼛속 깊숙이 깨우쳐야 한다. 내 항의와 민원이 과도하고 폭력적이지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고 절제하는 성찰적 행동이 필요하다. 부모의 양육권은 아이의 권리, 교사의 인권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서 의미를 갖는다. 자기 통제를 망각한 순간 더 이상 인권이 아니다. 책임과 자기 통제를 망각한 인권은 그저 괴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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