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38년 권좌’ 훈센, 총선 압승…권력 세습 강행할 듯
“3~4주내 장남 훈마넷에 총리직 넘기겠다”…민주주의 더 후퇴
국민들 “정당 사실상 하나, 시간낭비” 투표 보이콧 벌이기도
하나 마나 한 선거였다. 38년째 캄보디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훈센 총리(71)가 23일 열린 총선에서 이변 없이 압승했다. 남은 관심사는 훈센 총리의 후계자인 장남 훈마넷(45)에게 언제 총리직이 승계되느냐다. 이미 최악 수준인 캄보디아 민주주의는 한층 더 후퇴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훈센 총리가 이끄는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은 이날 개표가 2시간가량 진행된 시점에 “우리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국회(하원) 125석 싹쓸이가 예상된다. 잠정 투표율은 84.21%를 기록했다.
이는 일찌감치 예견된 결과다. 이번 총선엔 CPP를 포함해 총 18개 정당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이 중 CPP를 제외하면 인지도가 낮은 군소정당이 대부분이었다. 훈센 총리에 맞설 대항마가 없었던 셈이다. CPP는 지난해 6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1652개 코뮌(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1648곳을 휩쓸었다.
그동안 훈센 총리는 ‘일당 지배 체제’ 구축을 위해 야당과 시민사회를 형해화 했다. 훈센 체제에 반기를 든 야당 인사들은 거의 모두 투옥됐거나 망명 신세에 놓여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훈센 반대파인 캄보디아촛불당(CP)의 총선 참여 자격을 박탈했다. 최근에는 삼랭시 전 캄보디아구국당(CNRP) 대표에게 선거개입 혐의를 씌워 공직 출마를 25년간 금지하고 벌금 5000달러를 부과했다. 캄보디아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독립언론 ‘민주주의의 소리’는 올 초 훈센 총리와 훈마넷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폐간됐다.
이렇듯 결과가 뻔히 예상되다보니 투표를 보이콧하겠다는 유권자들도 나타났다. 캄보디아의 한 거리 상인(45)은 “정당이 (사실상) 하나뿐인데 내가 왜 투표를 해야 하느냐”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또 다른 청년(23) 역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투표를 위해 고향으로 가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훈센 총리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당신이 익명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다 알 수 있다”며 보이콧 움직임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안팎의 관심은 훈센 총리의 장남 훈마넷의 총리직 승계 시점으로 옮겨갔다. 이번 총선에서 CPP가 승리하면 훈센 총리는 5년간 집권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훈센 총리는 선거를 며칠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총선 이후 3~4주 내로 훈마넷에게 권력을 주겠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총리는 국회 제1당의 추천을 받아 국왕이 지명하지만, 훈센 총리가 사실상 국가원수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력 이양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훈마넷은 2018년부터 훈센의 정치적 핵심 집단인 CPP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4성 장군급인 캄보디아왕립 육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훈센 총리는 2021년부터 훈마넷을 자신의 후임자로 점 찍고 지도자 수업을 하며 힘을 실어줬다.
훈마넷이 총리가 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캄보디아인 최초로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해 서방에 유화적인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훈센 총리가 상왕으로 군림할 CPP 내 권력구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훈센 총리는 1979년 베트남이 크메르루주를 몰아낸 뒤 세운 괴뢰정부하에서 승승장구하다 1985년 총리에 취임해 38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하고 있다. 그동안 캄보디아 민주주의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23 세계자유지수에서 캄보디아는 100점 만점에 24점을 기록했다. 공정한 선거·정치적 다원주의·야당의 기회 항목에서 모두 0점을 받아 북한과 같은 수준이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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