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향기 “동생 윤복희 영향, 가수 꿈 키워..키보이스=BTS급 인기” (‘마이웨이’)[Oh!쎈 종합]

박하영 2023. 7. 2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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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박하영 기자] ‘마이웨이’ 윤향기가 폐결핵 말기 선고 당시 심경을 털어놓은 가운데 동생 윤복희를 보고 가수 꿈을 키웠다고 고백했다. 

23일에 방송된 TV CHOSUN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한국의 비틀즈’로 불리던 1세대 록그룹 ‘키보이스’의 멤버, 가수 윤향기의 인생 이야기가 공개됐다. 64년 차 베테랑 가수 윤향기는 그룹에서 호소력 짙은 보컬과 뛰어난 작곡, 작사 능력으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바.

특히 메가 히트곡으로 유명한 ‘해변으로 가요’는 윤향기의 손에서 탄생한 노래 중 단연 대표곡으로 꼽히며 현재까지 여름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 ‘별이 빛나는 밤에’ ‘장미빛 스카프’, ‘나는 행복합니다’ 등 솔로 활동까지 탄탄대로를 달리며 당대 최고의 가수로 기억됐다.

이날 ‘가요무대’ 준비를 하고 있던 윤향기는 후배 가수 김세환, 조항조를 만나 키보이스에 대해 추억을 회상했다. 당시 ‘정든배’로 화려하게 데뷔한 키보이스는 한국의 비틀즈로 불렸다고. 윤향기는 “기사에서도 한국의 비틀즈 키보이스 라고 했다. 64년도에는 영국 비틀즈가 미국에서 넘어가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드럼을 치고 노래도 불렀다. 당시 스탠드 마이크가 없어서 일자로 마이크를 세우고 다리 사이에 둔 채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기술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조항조는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활동하셨던 선배님들이라 그 실력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라고 감탄했다.

무엇보다 윤향기는 ‘키보이스’ 활동 당시 인기가 많았다며 “10명 중 8-9명이 거의 여성 팬이었다. 여자 중고등학교부터 가서 강당 공개 방송을 시작했다. 밖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강당에서 방송하고 공연했다. 지금은 BTS가 세계적인 그룹이지만 7-80년대에는 BTS 못지않는 인기를 누렸다”라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윤향기는 동생 윤복희 영향으로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처음 미8군 들어간 게 동생 윤복희였다. 윤복희가 당시 오산 미군 부대 공연장에서 하우스 밴드의 전속 가수로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거길 가끔 따라갔는데 그때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동생 쇼 하는 거 보러 놀러갔다가 주저 앉았다. 심부름하고 하면서 드럼, 노래를 배웠다”라며 윤복희 무대를 보고 가수의 꿈을 꿨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노력 끝에 가수의 꿈을 이룬 윤향기는 솔로 가수로서도 성공, 연이은 히트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동생 윤복희에게 ‘여러분’이라는 곡을 줬던 바. 이에 대해 윤향기는 “윤복희 가창은 대단하다. 동생이 개인적으로 좀 아픔을 겪었다. 그 당시에 그래서 동생을 내가 뭔가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다시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주고 싶었다”라며 밝혔다.

윤복희는 “그 곡은 제가 굉장히 치유를 받은 곡이기 때문에 알리고 싶었다. 누구든 치유를 받으라고. 나도 치유를 받았으니까”라고 전했다. 이후 ‘여러분’은 임재범, 테이, 김경호, 럼블피쉬, 손승연, 에일리 등 따라 부르면서 이제는 전설이 된 곡이 됐다. 이에 윤향기는 “내가 만든 곡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기억이 되고 불리고 사랑 받는다는 게 작곡가로서 너무 감사하다. 내가 복을 받은 거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윤향기는 아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을 등한시했다. 말이 남편이지 집에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었다. 외부에서 생활을 했다. 요즘 애 하나 키우도 힘든데 5명을 키우는게 보통 여자 아니고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말 견내기 힘들었을 거다”라며 미안함으 드러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소홀히 했던 윤향기는 어느 날 시련을 만나게 됐다. 바로 폐결핵 말기 진단을 받았던 것. 윤향기는 “엄청나게 스케줄이 말도 못하게 바빴다. 병원에서 가서 검사를 해야 하는데 좀 괜찮다 싶으면 안 갔다”라고 말했다.

결국 스트레스가 쌓여있던 윤향기는 1977년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에 대해 “폐결핵 말기라고 해서 그 당시 의술로서 사실 치료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오래 생활 해봐야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거다”라고 털어놨다. 삶의 끝자락에 선 윤향기에 손을 내민 건 다름아닌 아내였다. 윤향기는 “집사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생 많이 했다. 제 아내가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서 1년 만에 치료가 됐다. 기적이다”라고 전했다.

/mint1023/@osen.co.kr

[사진]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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