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의 ‘집속탄 역공’... 우크라가 쏘자 “기자 4명 사상” 비난전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7. 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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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1년 전부터 계속 사용...외신들 “적반하장”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외곽에 떨어져 있는 러시아군의 집속탄 뼈대. /뉴시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 간 교전 과정에서 집속탄(集束彈) 사용을 둘러싼 논란이 1년여 만에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집속탄을 집중적으로 사용해 큰 비난을 받았던 러시아가 이번엔 우크라이나의 집속탄 사용을 물고 늘어지며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대한 역공(逆攻)에 활용하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도 시리아와 체첸 등에서 광범위하게 집속탄을 사용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픽=양인성

러시아 국방부는 2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의 피아티카트키 마을에서 취재 중이던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과 일간 이즈베스티야 소속 기자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아 1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사망한 기자는 리아노보스티통신 소속 취재 기자로, 같은 회사 소속 사진 기자와 이즈베스티야 소속 취재·영상 기자 등도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아노보스티통신도 이날 “우리 매체 소속 기자인 로스티슬라프 주라블레프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숨졌다”며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를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기자가 사망한 것은 이번이 12번째다. 러시아는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집속탄 사용에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비난에 나섰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집속탄 사용을 취재하러 갔다가 집속탄 공격에 노출됐다”며 “우크라이나의 집속탄 사용이 민간인 피해를 낳았다”고 역설했다. 러시아 외교부도 비난전에 가세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 언론인에게 잔혹한 공격을 한 가해자는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집속탄을 제공한 이들(미국)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속탄은 큰 폭탄 안에 수백개의 소형 폭탄(자탄)이 들어 있는 무기로, 단번에 광범위한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초토화할 수 있다. 앞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방어 진지를 대상으로 집속탄을 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달 초 탄약 부족을 겪는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제공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대규모 지뢰 지대로 보호되는 러시아군의 방어 진지 공략을 위해선 (광범위한 타격을 주는) 집속탄 사용이 불가피하다”며 “민간인 지역에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그러나 이날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벨로고트의 민간인 마을 주라블레프카에 우크라이나군이 집속탄을 사용했다”고도 주장했다. 벨고로트 주당국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러시아가 집속탄을 구실로 삼아 우크라이나와 대(對)서방 비난전에 나섰다”며 “앞장서 집속탄을 써놓고 적반하장(賊反荷杖)식 행태를 보인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 전선 전역에서 집속탄을 사용, 막대한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유엔 감시단이 직접 확인한 것만 최소 24건,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제 인권 기구와 함께 확인한 것은 수백건이다.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에서는 병원과 아파트, 학교에 집속탄을 사용했다. 민간인 집단 학살이 벌어진 키이우 인근 부차에선 집단 매장지의 시체 500구 중 8구에서 러시아산 집속탄 파편이 나왔다.

러시아군은 특히 지난해 3~5월 사이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공격 과정에서 집속탄은 물론 백린탄(白燐彈)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용해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또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 수천명을 집단 매장지 수십 곳에 묻은 것이 위성사진을 통해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제 인권 단체들이 추정하는 마리우폴의 총 민간인 사망자는 2만명에 달한다. 더타임스와 가디언 등 영국 매체들은 “러시아는 체첸과 시리아에서도 도시 포위전을 벌이며 집속탄을 대규모로 사용해 민간인 수만명을 희생시켰다”며 “러시아군의 초토화 전략에 집속탄은 핵심적 무기”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지금도 집속탄을 사용 중이다. 불발탄과 파편 등 명백한 증거도 계속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집속탄 사용 사실은 계속 부인 중이다. 독일 공영 언론 도이체벨레(DW)는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한 우크라이나군 훈련장이 러시아군의 집속탄 공격을 받았다”며 “이로 인해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들 중 영상 기자 1명이 집속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현장에 있었던 DW 기자는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린 뒤, 뒤이어 수없이 많은 폭발음이 뒤따랐다”며 모(母)폭탄이 터진 후 자탄(子彈) 수백개가 뒤이어 폭발하는 집속탄 공격을 받았음을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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