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필요치 않은 사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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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전국을 강타한 엄청난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는 이분들의 용기에 감사를 표하고 나서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곧바로 화난 눈을 들어 이분들이 상식적인 수준 이상의 지나친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의인'이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상황에서, 누군가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우리 사회의 구멍을 자신의 어깨로 기꺼이 짊어진 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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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전국을 강타한 엄청난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재산피해도 안타깝지만 이번 호우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많다는 점이 더욱 가슴 아프다. 특히 지난 15일 오송의 지하차도에 들어찬 물로 14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은 충분히 예견하고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 바쁜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의인(義人)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터널 안에 갇혀서 허둥지둥 탈출하면서도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의 손을 붙들고 찢어진 손으로 철제 난간을 움켜쥐며 함께 빠져나온 용감한 공무원도 있었고, 엔진이 멈춰 선 버스를 자신의 트럭으로 밀어 올리려고 하다가 함께 고립되는 상황이 되자 트럭 지붕 위에 올라가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세 명이나 구출한 트럭 기사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위험과 희생을 감내한 진정한 영웅들이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깊은 감탄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무거워지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왠지 우리 사회에는 '의인'들이 너무 많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자신의 탈출을 뒤로 미루고 학생들의 구명조끼를 먼저 챙기다가 숨을 거둔 선생님들이나 민간 잠수사의 신분으로 목숨을 걸고 사고자 수습 작업을 했던 김관홍 잠수사를 비롯한 스물다섯 분의 잠수사들, 가까이는 작년 10월 이태원 참사 때 좁은 난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손을 뻗어 수많은 사람들을 압사에서 구한 시민들도 모두 '의인'들이다. 이렇게 큰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사실 뉴스를 꼼꼼히 살펴본다면 며칠에 한 번쯤은 '의인'의 미담을 접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하자면, '의인'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하기 힘든 일정 수준 이상의 과도한 위험이나 큰 희생을 스스로 감수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분들의 용기에 감사를 표하고 나서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곧바로 화난 눈을 들어 이분들이 상식적인 수준 이상의 지나친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의인'이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상황에서, 누군가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우리 사회의 구멍을 자신의 어깨로 기꺼이 짊어진 분들일 수 있다. 호우로 인한 경보를 행정 담당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더라면, 관할을 따지지 않고 예측가능한 사고를 막기 위해 재빨리 교통통제를 했더라면 오송 지하차도에 의인의 역할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어 유지되는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라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사회다.
중국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는 요순시대, 그러니까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시대라고 한다. 요임금이 시중을 살펴보려고 평복차림을 하고 거리에 나섰을 때 어느 노인이 막대기로 땅을 치며 '임금의 덕은 나랑 상관이 없네'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내 역할이 필요가 없다니 세상이 평화롭게 잘 돌아가고 있구나' 하며 안심했다는 고사가 있다. 우리도 언젠가 그런 '격양가'(擊壤歌)를 불러 봤으면 좋겠다. 의인도 영웅도 필요치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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