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족, 집값 떨어져 자책…고점에 샀다고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2030세대, 아파트를 금융상품 인식…불안감 겹쳐 투자 광풍 가세
예비 구매자, 원리금이 소득 30% 넘지 않게 자금 대출 계획 짜야
최근 몇년간 이어진 집값 폭등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패닉바잉’(공포로 인한 사재기성 매수)을 불러일으켰다. KB부동산 집계 기준 2021년 전국 아파트값은 1년간 평균 18.38% 상승했다.
부동산 투자 광풍 속에서 ‘강남 4구’ 편입에 성공한 서울 강동구의 한 대장 아파트는 2021년 10월 매매가격이 20억원까지 치솟았다. 1년 전 평균 매매가격은 14억원 수준이었던 단지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당장 집을 사지 않으면 더 이상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했고, 청약경쟁률은 역대 최고를 연달아 갈아치웠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의미의 2030세대 ‘영끌족’이 너나없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우상향’할 것 같았던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 여파 등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패닉바잉’ 대열에 뛰어들어 ‘영끌’ 대출로 내 집 마련을 했던 2030세대는 ‘집값은 떨어지는데 대출금리는 오르는’ 상황 속에서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부동산 분야 전문가로 30년 가까이 시장을 분석해온 박원갑 KB국민은행 WM투자솔루션2부 수석전문위원(부동산학 박사)은 “2030세대가 최근 집값 급등기에 아파트 매입에 나선 것은 주택시장에서의 고통스러운 손바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면서 “그 손바뀜이 비싼 가격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고, MZ세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KB국민은행 종합자산관리센터에서 박 수석전문위원을 만나 ‘벼락거지’와 ‘패닉바잉’을 거쳐 ‘패닉셀’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부동산 시장을 진단하고, 집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 최근 들어 ‘바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측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전문가일수록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고점인지 알 수 없다. 바닥과 꼭짓점은 결국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라면 시장을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데, ‘만능의 분석기법’이 없기 때문이다.”
- 집값 예측이 무의미하다는 얘기인가.
“결국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외지인 거래 비중’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서울 아파트를 사들인 비중이 지난해 12월 3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거래가 기준 아파트 값이 바닥 시점이다. 서울 아파트의 외지인 거래비중 장기 평균이 18.7%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수준으로 뛴 것이다. 모험적 투자자 비중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실거래가 기준 아파트값이 바닥을 찍고 상승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 M1(협의통화)/M2(광의통화) 비율이 너무 높으면 집값 꼭지 신호로도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어느 정도 집값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의 예측이 매번 맞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맞았지만 다음에도 맞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부동산 시장은 단선적이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은 외부변수들이 작용하고 있다. 바닥은 오를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예측불가능한 어떤 요인으로 또 다른 바닥이 다가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 최근 집값 급상승기(2020~2021년)에 2030세대를 중심으로 아파트 ‘패닉바잉’이 크게 증가했다. 당시 정부는 집값이 안정될 테니 ‘패닉바잉’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시장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불신했고, 무엇보다 불안감 때문이다. 단군 이래 재무 지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2030세대가 왜 대거 집을 사들였을까. 물론 ‘지금 아니면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불안감도 컸겠지만, 지금의 2030세대는 아파트를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인식한다. 즉 아파트가 더 이상 ‘거주하는 공간’이 아닌 투자 대상이 된 것이다. 지금은 시시각각 거래되는 아파트 가격을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들의 패닉바잉이 결국 집값을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준 셈이다.”
- 최근 출간한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심리 수업>을 보면 아파트를 ‘가시 속의 알밤’이라고 표현했다.
“집의 기능 자체가 본말이 전도됐다. 삶의 거처로서 ‘살기 좋은 집’보다는 ‘팔기 좋은 집’이라는 자산 개념이 주택 구매의 결정 요소가 됐다. 아파트의 주거 효용성은 매우 뛰어나지만 집을 가진 사람조차도 수시로 노출되는 가격에 불안감을 느껴야 한다. 알밤을 꺼내 먹을 때처럼 아파트에 거주할 때도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여기서 가시는 곧 출렁이는 가격이다. 출렁이는 가격은 불안을 유발한다. 결국 아파트가 편안과 불안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매주 아파트 시황이 발표되지 않나.”
- 사람들이 매주 시황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도 있다.
“가격이 많이 노출되는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은 가격 변화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는 시세차익을 위해 언제든지 교환 가능한 상품이 됐다. 사실상 ‘원시화폐’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집을 언제 사고 팔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지역은 대도시로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강원도나 경상도 산골짜기 집을 사고팔 때는 ‘마켓 타이밍’이 필요하지 않다.”
- 영끌로 아파트를 마련한 사람들은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텐데.
“아파트 가격에 올인하는 삶은 가격이 모든 것이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면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기 판단에 대한 미움이고, ‘내가 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 하는 자기에 대한 학대이자 괴롭힘이다. 위로의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부동산 시장은 사이클을 탄다. 역사적으로도 고점에 산 사람들이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대치동 A아파트나 상계동 B아파트를 고점에 산 사람도 2021년에는 집값이 매입가의 2배 이상으로 오르는 경험을 했다.”
- 이제 내 집 마련에 대출은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 됐는데, 예비 구매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대출을 통해 적당히 내가 좋은 ‘홈(home)’을 마련하라.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은 찬성이지만 전체 원리금이 수입의 30%를 넘지 않도록 하고, 가격 정보에는 민감하되 너무 내 집 시세를 들여다보지 않기를 바란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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